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한 미 연방수사국(FBI) 극비 메모 공개를 주도한 공화당 데빈 누네스 하원정보위원장이 지난해 7월25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재러드 쿠슈너 선임 고문을 만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쪽과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 당국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연방수사국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관련 비밀 메모 공개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지만, 백악관은 이를 공개할 방침이다.
연방수사국은 31일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수사와 관련한 극비 메모를 공개하도록 결의한 공화당의 조처를 비판하는 공개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은 연방수사국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백악관과의 이견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앞서 29일 하원 정보위에서는 법무부와 연방수사국이 권한을 남용해 트럼프 대선 선거운동 진영의 인사 카터 페이지에 대한 비밀감시를 허용하는 영장을 받았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비밀메모을 공개하자는 결의가 공화당 주도로 의결됐다. 이 메모는 미 정부의 해외정보감시법(FISA) 남용 목록 작성을 위해 의회 차원에서 공화당의 데빈 누네스 정보위원장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법무부는 이 메모의 공개가 미 정보기관의 활동을 노출시키는 ‘극히 부주의한’ 행동이라며 반대해왔다.
연방수사국은 성명에서 “정보위가 그 메모 공개 결의를 하기 전에 이를 검토할 제한적 기회를 제공받았다”며 “우리는 그 메모의 정확성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줄 사실 자료의 누락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메모는 의회 결의 뒤 5일 내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공개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트럼프는 이 메모를 공개하겠다고 밝혀왔고, 백악관은 이를 빠르면 1일 공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31일 의회 국정연설 앞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메모 공개에 대해 “100% 걱정마라”고 말했다. 연방수사국의 성명은 트럼프를 겨냥해, 메모 공개를 반대한 것이다.
백악관은 침묵을 지켰으나, 메모 공개를 주도한 누네스 정보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연방수사국의 반대는 ‘비논리적’이라며, 수사 기관들이 의회와 법원에 제출할 자료를 누락했다고 비난했다.
연방수사국의 상급 기관인 법무부도 메모 공개를 반대해왔다. 법무부는 그 공개가 민감한 정보원과 정보 수집의 방법 등 정부의 비밀을 공개하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계속 경고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장과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은 지난 29일 백악관을 찾아가, 존 켈리 비서실장에게 메모 공개를 막아달라고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트럼프가 지난해 5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장을 해임한 이후 법무부와 연방수사국 쪽에서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하려는 트럼프 쪽에 불만을 잠재해왔다. 이번 성명을 계기로 수사 당국 쪽에서의 반격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트럼프로부터 “나의 팀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시엔엔>에 의해 보도됐다.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놓고 로젠스타인을 압박한 것을 법무부 쪽에서 흘린 것이다.
로젠스타인은 지난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감독권을 포기하자, 이를 물려받고는 로버트 뮬러 특검 임명을 허가한 인물이다. 로젠스타인은 또 문제의 메모에 나오는 카터 페이지에 대한 감시영장 갱신도 허가했다. 트럼프는 로젠스타인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장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레이 국장은 최근 며칠동안 백악관을 찾아, 메모 공개를 막아달라고 부탁해왔다. 코미의 후임으로 트럼프가 임명한 레이 국장은 그동안 연방수사국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을 직면해왔다.
트럼프와 대결적인 태도를 취하지않던 레이 국장도 지난해 12월 트럼프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반박했다. 트럼프가 연방수사국의 평판은 “사상 최악”이고, 그 명성도 “누더기”라고 비난하자, 레이는 직원들에게 연방수사국의 전문서과 헌신은 감동적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레이는 지난 29일 물러난 앤드루 매케이브 부국장 문제에서도 트럼프에 저항해왔다. 트럼프는 매케이브가 민주당 편향이라며 사퇴시키려 했다. 레이는 임명 청문회 때 자신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정치적 간섭에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9월 연방수사국은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방수사국은 법치를 준수하고 자신이 국장으로 재직하는 한 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힌 바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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