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0 18:17
수정 : 2019.12.11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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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위 관리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18년 동안 국민에게 줄곧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고 9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미국과 탈레반 간에 평화협정 초안 합의가 이뤄진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차량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 아프간 지원군 병력이 출동, 조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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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3년간 법정투쟁 끝 정부기밀 문서 폭로
아프간전 관여 관료 등 400여명 인터뷰 통해
대통령 등 당국자들 장밋빛 전망 쏟아냈지만
미 정부, 아프간전 승산없는줄 알고도 거짓말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 설문조사 왜곡“ 증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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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위 관리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18년 동안 국민에게 줄곧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고 9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미국과 탈레반 간에 평화협정 초안 합의가 이뤄진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차량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 아프간 지원군 병력이 출동, 조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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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군경의 전투 능력이 날이 갈수록 대단히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거야말로 널리 알려야 할 소식이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2013년 9월4일 육군 3단장의 신분으로 아프간 수도 카불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2001년 9·11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12년째 계속되던 때였다.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 등을 통해 아프간 보안군이 자력으로 치안·보안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당시 아프간 보안군 훈련을 담당했던 미군 관계자들의 실제 평가는 달랐다. 이들은 아프간 보안군이 탈레반을 퇴치할 능력은커녕 피할 능력조차 없는 ‘유령 군인’이나 다름없으며, 아프간 보안군 지휘관들은 미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월급을 챙기기 바빴다고 혹평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9일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아프간 전쟁에 관해 이제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실상을 폭로했다. 미 정부가 기밀로 돌려버린 2천여쪽짜리 보고서를 3년여의 법정공방을 통해 입수해 분석 보도한 것이다. 신문은 미국 역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공개 석상에서 했던 발언과 보고서에 드러난 실제 상황에 대한 증언을 교차해 전하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이후 미국 정부가 줄곧 아프간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민에게 이를 숨기고 장밋빛 전망을 반복해 내놓았다고 비판했다.
신문이 입수한 보고서는 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이 아프간전과 직접 연관된 장군, 외교관, 구호단체 활동가, 아프간 관료 등 400여명을 인터뷰해 작성한 ‘교훈들’이다. 이 보고서에서 인터뷰에 응한 이들 대부분은 그간 아프간전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한데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미국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설문조사가 왜곡된 방식으로 동원되기도 했다”(밥 크롤리 육군 대령)는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아프간전 고문 역할을 했던 3성 장군 출신 더글러스 루트는 “우리는 아프간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결여돼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의 최종 ‘목표’에 대한 미 고위 당국자들의 견해차가 해소되지 않아, 나중엔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적’을 규정짓는 일조차 어려웠다고 전했다. 아프간 민주화를 전쟁의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부터, 파키스탄·인도·이란·러시아 간 세력 균형 재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당국자 간 의견이 갈렸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아프간에 1조달러(약 1191조원)가 넘는 비용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시·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일했던 제프리 에거스는 “1조달러를 들여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이후 아프간에서 우리(미국)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를 생각하면 (수장된) 빈라덴이 웃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교훈들’ 보고서가 애초 정부 기밀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신문이 이를 공개하려고 하자 연방정부 기관들이 나서 일부 내용을 기밀로 돌렸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에 3년에 걸쳐 두차례 소송에 나섰고, 결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로부터 428명의 인터뷰를 포함한 2천여쪽짜리 문서를 받아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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