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지지자가 1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 앞에서 어산지의 사진과 함께 ‘송환 반대, 어산지 석방’이라고 적힌 선전물을 들고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에게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이메일 해킹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대가로 사면 거래를 제안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게이트’ 개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로저 스톤 등 측근들의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폭로라서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어산지의 변호인은 1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치안법원에서 열린 송환 예비심리에서 공화당 소속 데이나 로러배커 전 하원의원이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라며 어산지를 찾아와 이런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고 <가디언> 등이 일제히 보도했다. 2017년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트럼프가 로러배커를 보내 사면 거래를 타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지만, 어산지 쪽이 이를 사실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어산지는 외교 기밀문서 누설과 성폭행 혐의로 자신을 기소하려는 미국·스웨덴 정부로부터 송환 요구를 피하기 위해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다. 트럼프가 자신의 대권 정통성을 흔드는 ‘러시아 게이트’를 무마하기 위해 어산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잖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어산지 쪽의 폭로 사실이 알려지자 ‘사면 거래 중재자’로 지목된 로러배커와 백악관은 관련 사실을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로러배커는 “어산지를 만났을 때, 민주당 전국위원회 이메일을 실제로 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와 증거를 주면 트럼프에게 사면을 요청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트럼프와는 어산지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도 없을뿐더러 어산지를 만난 것도 트럼프나 그밖의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각이 그랬다는 것일 뿐, 백악관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해명이다. 그는 이후 존 켈리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해 어산지와의 사면 거래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켈리가 이런 내용을 트럼프에게 전달하진 않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백악관 쪽에선 아예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로러배커라는 사람이 전직 하원의원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다”고까지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가디언>은 “로라배커가 <폭스> 채널에 나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보고 트럼프가 2017년 4월 그를 백악관에 초대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예비심리는 어산지의 미국 송환 재판 시작(24일)을 앞두고 열렸다. 미 정부는 지난해 어산지를 정부 컴퓨터 해킹 공모 등 18개 혐의로 기소하며 영국 정부로부터 그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어산지는 징역 175년형에 처할 수 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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