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재직 중인 대학에서 1년간의 연구년을 얻어 미국에서 약 5개월여를 보내고 있는 국문학 전공 교수이다. 국문학자가 굳이 미국까지 온 이유로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이모저모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극히 단순한 답변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자리에서 미국행의 자세한 내막까지 드러낼 필요는없을 듯 하고 실상 그것이 미국에 온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경험하다보니 문화비평적 시각에서 내가 본 미국을 정리하고 싶었다. 기껏 일 년의 체류에 불과하므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인상기에 지나지 못할 듯하고, 또 본격적인 연구에 갈음하는 것도 아닌 글이라, 하나의 견문기라 함이 옳겠다. 그러나 짧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었던 미국에 대한 통념과는 다른 면이 많아 사회 문화적 시각에서 다른 이들과 나누어 보고픈 나름의 견해들이 똬리를 틀었다. 몇 편에 걸쳐 정리하는 글은 바로 이런 내력의 소산들이다.
열 세시간을 이코노미석에 끼어서 거의 옴쭉달쭉을 못하다시피 고통스런 비행끝에 다다른 곳은 뉴욕의 근교 도시랄 수 있는 포트 제퍼슨(Por Jefferson)이란 곳이다. 롱아일랜드는 맨하탄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섬의 형국을 하고 있는, 뉴욕 시에 가까운 전원 도시다. 도로변마다 수목이 울창해서 우리나라의 강원도 못지 않게, 혹은 보다 더 풍광이 좋고, 사방이 대서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탁트인 대서양과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내가 겪은 미국견문기이니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나서 코끼리란 거대한 기둥같다는 말을 내뱉는 격이 되지 않을지.... 그저 개인적 경험과 인상이 보편적 진실에 닿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받은 문화적 충격은 미국이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는 인상이 많이 훼손된 데서 비롯되었다. 시스템에 의해 나라가 움직인다 함은 한 나라가 강제하는 법질서와 행정 체계를 따라가면 모든 행정적 절차와 민원이 해결됨을 이르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내가 직접 겪어본 바 미국에 대한 이러한 통념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행정적 민원을 해결하는 데 담당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을 종종 경험했거니와, 이는 모든 한국인의 공통적 경험기였다. 예를 들어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흡사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받으러 간 사람들 중에는 창구의 담당자가 너그러우냐 까다로우냐에 따라 그것을 쉽게 발급받기도 하고 언쟁을 하다시피해서 받아내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는 일이 생긴다. 이건 이 사람들의 신뢰성에 많은 손상을 가져 오는 부분인데, 이런 일은 아파트 관리 상의 문제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공적 업무는 빈틈없이 잘 처리해 주는 줄로 알고 아파트 시설 상의 문제를 아파트 매니저에게 부족한 영어로 이야기했더니 이 찬구가 꿩 구워먹은 소식이다가 나중에는 나도 이러면 월세를 제때에 못 준다는 협박성의 메시시까지 남겨서야 해결해 준 경험을 했다. 이건 소통에 약한 황색인에 대한 차별대우까지 겹쳐 그런가 하는 것이 아직까지의 막연한 짐작인데 이 친구들이 정말 웃기는 것은 월세까지도 이 사람 저 사람 흥정에 따라 달리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을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말했더니 미국도 역시 이면의 흥정이 대단하단다.
그리고 공적 업무 처리를 하면서 전화문의를 하면 전화받는 사람마다 답변이 다른 경우도 있어 금전적 문제라든지 중요한 사안이 걸렸을 때는 철저한 확인이나 증거물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익히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경우로 해서 미국이 시스템에 의해 조리정연하게 움직이는 나의 통념은 보기 좋게 깨어진 것이다. 일의 처리 속도도 그랬다. 중국인의 만만디는 저리 가라 싶게 모든 행정 처리 속도가 더디고 모든 결과는 꼭 우편물로 발송해 주기 때문에 은행카드 하나 받는데도 일주일 꼬박 걸리는 형편이다. 물론 더딘만큼 철저하다고 이곳 동포들은 입을 모았지만 요즘 한국의 행정적 민원들이 모두 인터넷으로 신속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데 비하면 그리 자랑할 만한 체제도 아닌 듯 했다. 또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오타나 오기 등으로 해서 행정적 실수가 빈번한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의 철저성이란 것도 그리 신용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처럼 미국의 합리성과 체계성에 대한 나의 통념은 상당한 손상을 입었는데 그와 달리 나의 통념을 깬 것이 이 사람들의 후덕함이었다. 내가 경험하기로 중년 이상의 미국인들은 대개 친절하고 낯선 이방인에게 관대해 보였다. 헐헐 거리며 잘 웃고 관습에 익숙지 않아 서투른 이방의 황색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맨하탄의 박물관 구경을 나갔다가 지하철을 갈아타려다 헤매게된 우리 가족을 친절히 안내해 준 키 조그만 백인 아가씨는 잊을 수 없다. 이는 미국인들이 합리성을 갖춘만큼 매우 쌀쌀하고 냉담한 개인주의자들일 것이라는 나의 통념을 여지없이 뒤집어 놓았다. 이곳에서 오래 산 동포들 가운데는 이 사람들이 그러다가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문제에 부닥치면 얼굴을 무섭게 바꾼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예상과 다른 한 측면이었다. 물론 성격이 모나고 왜곡되거나 버릇없는 젊은이들을 만나 기분을 상한 적도 있긴 했으나 이러 일은 세상 어디서나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인상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사는 곳이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중산층들이 모인 전원도시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더해 미국인들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은 자녀들의 예절 교육이다. 이 문제 또한 우리의 통념을 깨는 것 중의 하나인데 이는 회를 달리하여 다음에 우리 한국민들의 교육열과 연관하여 자세히 논해 보고 싶다. 미국에서 살아보니(1) 끝.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적 업무 처리를 하면서 전화문의를 하면 전화받는 사람마다 답변이 다른 경우도 있어 금전적 문제라든지 중요한 사안이 걸렸을 때는 철저한 확인이나 증거물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익히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경우로 해서 미국이 시스템에 의해 조리정연하게 움직이는 나의 통념은 보기 좋게 깨어진 것이다. 일의 처리 속도도 그랬다. 중국인의 만만디는 저리 가라 싶게 모든 행정 처리 속도가 더디고 모든 결과는 꼭 우편물로 발송해 주기 때문에 은행카드 하나 받는데도 일주일 꼬박 걸리는 형편이다. 물론 더딘만큼 철저하다고 이곳 동포들은 입을 모았지만 요즘 한국의 행정적 민원들이 모두 인터넷으로 신속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데 비하면 그리 자랑할 만한 체제도 아닌 듯 했다. 또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오타나 오기 등으로 해서 행정적 실수가 빈번한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의 철저성이란 것도 그리 신용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이처럼 미국의 합리성과 체계성에 대한 나의 통념은 상당한 손상을 입었는데 그와 달리 나의 통념을 깬 것이 이 사람들의 후덕함이었다. 내가 경험하기로 중년 이상의 미국인들은 대개 친절하고 낯선 이방인에게 관대해 보였다. 헐헐 거리며 잘 웃고 관습에 익숙지 않아 서투른 이방의 황색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맨하탄의 박물관 구경을 나갔다가 지하철을 갈아타려다 헤매게된 우리 가족을 친절히 안내해 준 키 조그만 백인 아가씨는 잊을 수 없다. 이는 미국인들이 합리성을 갖춘만큼 매우 쌀쌀하고 냉담한 개인주의자들일 것이라는 나의 통념을 여지없이 뒤집어 놓았다. 이곳에서 오래 산 동포들 가운데는 이 사람들이 그러다가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문제에 부닥치면 얼굴을 무섭게 바꾼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예상과 다른 한 측면이었다. 물론 성격이 모나고 왜곡되거나 버릇없는 젊은이들을 만나 기분을 상한 적도 있긴 했으나 이러 일은 세상 어디서나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인상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사는 곳이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중산층들이 모인 전원도시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더해 미국인들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것은 자녀들의 예절 교육이다. 이 문제 또한 우리의 통념을 깨는 것 중의 하나인데 이는 회를 달리하여 다음에 우리 한국민들의 교육열과 연관하여 자세히 논해 보고 싶다. 미국에서 살아보니(1) 끝.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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