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스 제도’ 원주민 등이 2018년 9월 3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과 미국이 50년 전에 고향에서 쫓겨난 ‘차고스 제도’ 원주민들에게 귀향 허용을 포함한 보·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인권단체가 촉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15일(현지시각) 106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어, 영국과 미국 정부가 차고스 제도 원주민을 모두 강제로 쫓아내고 되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인종적 탄압을 한 것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며 이렇게 밝혔다.
인도양 한복판에 있는 섬들인 차고스 제도의 원주민들은 1960~70년대 당시 식민지 지배하고 있던 영국 정부에 의해 모두 강제로 쫓겨났다. 당시 영국은 미국과 비밀 협약을 맺어 미국이 차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디에고 가르시아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도록 허용했다.
이 협약에 따라 영국과 미국 정부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차고스제도에 사는 주민을 모두 인근 모리셔스 섬과 세이셸 섬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이들의 복귀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모리셔스와 세이셸, 영국에서 빈곤에 시달리고 차별을 받으며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했다.
이들 차고스 제도의 원주민은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차례로 이곳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와 영국이 플랜테이션 농업 노동력으로 끌고 온 흑인 노예의 후손이다. 이들은 이곳에 몇 세대를 거쳐 정착하면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언어인 차고스 크레올과 문화, 음악을 만들어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들은 국제인권의 기준에서 명백히 원주민 자격을 갖췄다”며 그럼에도 “영국과 미국 정부는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차고스 원주민을 아무 권리도 없는 사람들로 다뤘으며 아무런 협의나 보·배상도 없이 그들을 영구히 고향에서 쫓아낸 뒤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은 인권과 개인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과 신장에 대해 확고부동하다”며 “차고스 제도 주민들을 이주시킨 방식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에린 바클레이 국무부 차관보 대행은 지난달 휴먼라이츠워치의 관련 문의에 “우리는 영국 정부가 차고스 제도 주민들이 어디에 살든 4천만 파운드 규모의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지원을 해온 노력을 평가한다”고 사실상 영국 정부에 책임을 떠넘겼다.
영국의 해외영토·영연방·에너지·환경 담당 장관인 잭 골드스미스도 “차고스 주민들이 1960년대와 70년대 인도양 영국령에서 이주됐으며 그 일이 처리된 방식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973년 영국은 차고스 주민의 정착 비용을 위해 모리셔스 정부에 65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10억원)를 줬으며 또 “정착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00만 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61억원)를 더 지불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몇 년에 걸친 조사와 검토 끝에 이들 차고스 제도 주민들의 귀환은 “타당성과 국방 안보 이익, 영국 납세자의 부담을 이유로”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그들은 인도양 영국령에 거주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휴먼라이츠워치는 “영국 정부는 모리셔스 정부에 차고스 제도의 영토 상실을 보상했고, 코코넛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에도 농장 구입으로 보상했다”며 “영국도 군사기지 제공을 대가로 미국의 핵무기를 싼값에 넘겨받았지만, 정작 강제이주 당사자인 차고스 주민은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차고스 주민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소송에 나서자 영국은 차고스 주민의 정착비로 모리셔스 정부에 푼 돈을 던져줬을 뿐이라고 휴먼라이츠워치가 꼬집었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이 돈을 받은 차고스 주민에게 귀향 포기각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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