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다. 튀니스/AFP 연합뉴스
튀니지에서 이민자 유입이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음모”라고 비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이민자를 향한 공격과 야권 인사 체포, 이에 따른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5일(현지시각) <아에프페>(AFP) 통신은 주말 사이 수백명의 튀니지 시민들이 야권 정치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최근 몇 주간 튀니지에선 주요 야권 연합인 국가구원전선(NSF)에 참여 중인 이슬람 성향의 최대 정당인 엔나흐다 소속 정치인 등 20여명이 체포됐다.
정국 혼란은 지난달 21일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이민자의 유입이 자국의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음모라는 혐오 발언을 내놓으며 시작됐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유입이 빨리 끝나야만 한다며 이민을 튀니지를 아랍과 이슬람 국가와 무관한 순수한 아프리카 국가로 만들려는 음모라고 비판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튀니지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주요 통로로, 튀니지에 있는 이민자는 약 2만1천명 정도다.
사이에드 대통령의 발언 후 튀니지에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당국의 대대적 단속과 함께 인종차별적 공격이 증가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무사 오스만은 대통령의 “음모” 발언 다음 날 직장을 잃었다. 지난달 26일엔 튀니지인들이 오스만의 집에 쳐들어와 그의 여권과 휴대전화를 훔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폭력에 내몰린 오스만 같은 이들이 나이지리아 대사관으로 몰려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대통령 발언 후 튀니지 당국은 사하라 이남 이민자 수백명을 체포했다”며 “튀니지인들이 피부가 검은 이민자를 공격하고 폭행했으며 집에서 쫓아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연합은 “큰 충격과 우려”라며 비판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튀니지에 있는 자국민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야권 인사들도 체포됐다. 튀니지 당국은 정치인, 언론인, 활동가 등 사이에드 대통령 발언에 비난 목소리를 낸 이들이 국가에 반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인종차별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인권단체들은 대통령 발언이 튀니지 내의 인종차별 정서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헌법학자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의회 해산과 총리 해임,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 추진 등을 진행해 왔다. 대통령의 행보가 ‘독재’에 가까워지면서 야권 반발과 정치 무관심도 심해져, 지난해 12월 치러진 튀니지 총선은 투표율이 8.8%에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정권을 잡은 뒤 사이드 대통령은 독재자가 될 의도가 없다고 약속했지만, 체포와 거센 말들은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달리 그가 독재정치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줬다”며 “최근의 격변은 대통령에 대한 우려와 정치적 경쟁 세력 사이에서 분열된 튀니지인들을 동원했다”고 전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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