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이슬람 불안한 동거
시리아철군 놓고 대립 격화 조짐 시리아군 철수문제를 두고 극도의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레바논에서 지난 1975~90년 내전 당시의 종족갈등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디펜던트>의 중동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7일 “하리리 전 총리 암살 뒤 불과 20여일만에 26년 동안 주둔했던 시리아군이 철수하기에 이르렀지만, 레바논 국민들은 마냥 행복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며 기독교도가 반시리아 시위를 벌인데 이어, 시아파 정치단체 헤즈볼라가 외세개입을 비난하며 친시리아 시위에 나서는 등 내전 당시의 종족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내전 위기로 치닫고 있는 레바논 정정 불안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비극의 뿌리=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시리아 영토였던 레바논 땅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1932년 인구통계에서 전체 인구의 약 51%를 점한 마론파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수니·시아파 및 드루즈파 등 이슬람 인구를 포함한 신생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마론파는 이슬람 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1943년 독립을 앞두고 기독교도가 대통령을 맡는 대신, 수니파와 시아파는 각각 총리와 의회 의장을 차지하도록 하는 권력분립안을 마련했다. 또 당시 인구 구성비율에 따라 의회 의석을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6대 5 비율로 나누도록 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기독교도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이슬람 진영의 권력 재분배 요구가 빗발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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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과 외세=요르단에서 쫓겨온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1970년대 초반부터 레바논에서 사실상 ‘국가 안의 국가’를 건설하고 대 이스라엘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슬람 진영은 이들을 적극 환영한 반면, 위협을 느낀 기독교도들은 자체 민병대(팔랑헤)를 강화했다. 서로에 대한 공격과 보복은 1975년 4월 마침내 내전으로 번졌다. 베이루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교전사태는 곧 레바논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이슬람 진영의 공세에 눌려 패색이 짙어가던 기독교도들은 1976년 6월 시리아에 중재를 요청했다. 시리아는 곧바로 군대를 파견했지만, 유혈사태는 끊이지 않았다. 한편,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무장투쟁을 구실로 1978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유엔의 압력으로 물러갔던 이스라엘은 1982년 다시 레바논을 침공했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 현 총리의 비호 아래 기독교 민병대인 팔랑헤 당원들이 사브라·샤틸라 등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학살을 자행한 것도 이 무렵이다. 같은 해 베이루트 봉쇄를 끝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튀니지로 쫓겨갔고, 헤즈볼라가 탄생했다. ◇ 종족갈등의 제도화= 15년여를 끌어온 레바논 내전사태는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타이프에서 아랍연맹의 주선으로 열린 회담에서 탈출구를 마련하게 됐다. 새로운 종족간 권력분립안과 외국군 철수계획 등을 뼈대로 한 타이프 협정에 따라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1990년 8월 의회 의석수를 108석으로 확대하고,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같은 숫자로 의석을 배정받기에 이르렀다. 10만여명이 숨진 레바논 내전은 이로써 일단 막을 내렸다. 1992년 억만장자 사업가 라피크 하리리의 총리 취임뒤 재건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레바논 정국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지난달 그가 암살당하고 불안정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은 종족갈등을 제도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타이프 협정 체제의 취약성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19개 종파 백화점’ 분쟁 불씨 시아파·기독교 마론파가 주요 세력 레바논은 인구 370만명(유엔, 2004년)의 작은 국가지만, 공식적으로도 19개나 되는 종파로 나뉜 복잡한 종교·인구 지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중동에서도 가장 민감한 지역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에 가까워 이들 외부세력이 개입하고 종파간 균형이 깨지면 ‘내전’으로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종교·종파 균형이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1932년 이래 공식 인구조사가 행해지지 않아 세력들의 정확한 인구 비율은 알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현재 60%가 무슬림, 나머지가 기독교도라고 보고 있다. ◇ 시아파=레바논 이슬람의 주류이며, 최대 정치세력은 헤즈볼라다. 1982년 창설된 헤즈볼라는 자체 무장세력을 거느리고 이란·시리아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과 대립해 왔으며, 남부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비난하고 있지만, 레바논에서는 의회 주요 정당으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 수니파=소수파지만 총리를 배출하며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해왔다. 수니파 정당들은 최근 야당세력에 합류해 있다. 지난달 14일 암살당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는 대표적 수니파 정치인이며, 내전 이후 복잡한 종파세력과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재건을 지휘했다. ◇ 기독교 마론파=시리아 정교에서 파생돼 7세기부터 독자적인 세력을 이뤘다. 대표적 정당은 카타엡당(팔랑헤당)이며 내전 기간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슬람, 드루즈, 팔레스타인세력에 맞서 싸웠다. 내전 말기 대통령이었던 마론파 미셸 아운은 내전 종식을 위한 타이프 협정을 거부하고 시리아에 맞서다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현재 야당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드루즈=10세기부터 이슬람에서 분리되기 시작해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들여 발전한 독특한 종교다. 주요 정치세력은 카말 줌블라트가 창설한 레바논진보사회당이며, 그의 아들 왈리드는 현재 야당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다. 의회의원이며 백만장자인 왈리드는 내전 동안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민병대 지도자로 알려졌으며 시리아와도 가까왔으나 현재는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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