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드 아마디네자드(왼쪽) 이란 대통령이 12일 테헤란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국제회의에서 연설하기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
이란 국제학술회의 개최에 미-유럽-이스라엘 반발
“학살 부정 못하지만 신화화 경계” 목소리도
“학살 부정 못하지만 신화화 경계” 목소리도
중동분쟁이 격화하는 속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놓고, 이란과 서방 사이의 역사논쟁이 가열하고 있다. 이란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목소리가 담긴 국제학술회의를 열자, 유럽·미국·이스라엘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홀로코스트는 과장·허구”…비난 쇄도=11~12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정치·국제연구소가 주최한 홀로코스트 학술회의에는 30개국 67명의 학자들이 참가했다. 미국 인종주의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전 지도자이며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듀크, 홀로코스트를 부인해 처벌받고 대학에서 쫓겨난 프랑스 학자 로베르 포리송 등도 참석했다.
학술회의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학자 리처드 크레그는 폴란드 트레블린카수용소 모형을 보이면서 “독가스실이 있었다는 것은 순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기존 추산처럼 80만명이 아니라 단지 5천여명이 트레블린카에서 질병으로 숨졌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는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8명의 랍비(유대교 사제)도 참석했다. 이들은 메시아 출현 전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면 안 된다는 교리를 지닌 단체 소속이다. 한 랍비는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100만명에 그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12일 이 행사 연설에서 “이스라엘도 소련처럼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반유대주의’를 부추겼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유럽 11개 나라들은 이번 학술회의에 거세게 반발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라고 말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있는 힘을 다해 비난한다”고 가세했다. 미 백악관은 “역사적 잔학행위에 의구심을 제기하며 증오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마침 독일을 방문한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은 서구문명 전체의 위협요소”라고 받아쳤다.
홀로코스트 신화화 논쟁=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는 홀로코스트 그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희생 규모 추산은 조금씩 다르다. 미국의 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 라울 힐버그는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600만명보다는 적은 51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를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설정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신화화’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산업>(2004, 한겨레신문사)의 저자인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홀로코스트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이교도의 증오의 절정이라는 신념이 선민의식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 침공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1996년 레바논 남부 카나마을에 대한 이스라엘군 포격으로 100명이 넘게 숨졌을 때, 이스라엘 언론인이 “이스라엘은 면책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고 한 게 그런 인식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을 성서 예언 구현자로 보고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연결돼 중동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자기네들 나라의 영토 일부에 이스라엘이 옮겨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을 홀로코스트의 속죄양으로 삼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자료사진
이는 유대인들을 성서 예언 구현자로 보고 맹목적으로 지원하는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연결돼 중동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해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자기네들 나라의 영토 일부에 이스라엘이 옮겨가도록 하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을 홀로코스트의 속죄양으로 삼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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