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품 도착하려면 한달
국제사회 재건지원 외면 9·11 이후 미국이 국제 테러리스트 소탕을 외치며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지 3년 반이 지난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독재정권은 몰락했지만 국제사회의 외면 속에 주민생활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최근 이 나라를 덮친 폭설과 한파로 600명 이상이 숨졌고, 동부지역에서는 굶주린 아이들이 굶주린 늑대들의 공격을 받는 등 불행은 계속되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을 더 배고프게 만드는 것은 도로나 전기 등 사회기반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이다. 40만명 이상이 아프간 정부나 연합군, 나토 평화유지군, 유엔 등의 구호식량과 원조물자에 의지해 살아가는데, 최근 내린 폭설로 마을로 통하는 길이 모두 막혀 버렸다. 통신수단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이 나라에서 구호요원들이 아프간 서부나 북동부에서 눈에 갇힌 마을에 도착하려면 한달 이상 걸린다. 전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수도 카불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꼽히는 인디라 간디 병원조차 인큐베이터나 인공 호흡기에 의존해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목숨은 전기가 언제 끊기느냐에 달려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병원들은 의약품이 부족해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식량계획은 봄이 되면 쌓인 눈이 녹아 전례없는 홍수를 일으킬 수 있다고 이달 초 경고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국제사회가 약속한 재건기금은 굼뜨기만 하다. 2001년 12월 도쿄와 베를린에서 열린 아프간 재건회의에서 국제사회는 이후 5년 동안 134억달러를 지원키로 약속했다. 뉴욕대 국제협력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달까지 재건계획에 투입된 자금은 39억달러에 불과하다. 아프간 주민 6%만 제때 전기를 공급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전소는 한 곳도 세워지지 않았다. 전쟁 뒤 지금까지 카불에서 칸다하르에 이르는 구간에만 고속도로가 놓였다. 아직도 카불공항에는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착륙시킬 수 있는 레이더가 없다. 〈비비시방송〉은 이라크는 재건자금이 아프간보다 훨씬 많이 투입되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바그다드에 발전시설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카불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꼬집었다. 또 2002~2004년에 이 나라에서 68억달러어치 아편을 재배한 것을 두고, 방송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할 일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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