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사우디 국왕
이라크 주둔 비판…아랍 민심 다독여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불법 점령”으로 규정했다. 또 다른 동맹인 요르단 국왕은 방미 계획을 취소해, 조지 부시 행정부에 불만을 품은 ‘중동 왕실의 반란’ 조짐이 고개를 들고있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28일 수도 리야드에서 22개국 정상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아랍연맹 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 “사랑하는 이라크에서 외세의 불법 점령과 혐오스런 종파분쟁으로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적 봉쇄가 하루 빨리 끝나야 평화협상이 진전된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제재 해제를 반대하는 것을 비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아랍권의 맏형 노릇을 하는 사우디 국왕이 이처럼 직설적으로 미국을 비난한 것은 유례가 없다. 사우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아랍 지도자들이 반성하고 단결해야 “외세가 중동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압둘라 국왕은 다음달 17일 부시 대통령이 주최할 예정이었던 국빈만찬도 취소시켰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사우디 쪽은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백악관은 이런 설명을 석연찮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 오는 9월 미국 방문을 논의하던 압둘라2세 요르단 국왕도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사우디 압둘라 국왕의 돌출적인 ‘반미’적 언행은 그가 이달 초 사우디를 방문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공항까지 나와 영접한 일과 대조를 보인다. 이라크전과 팔레스타인 문제로 흉흉한 아랍권 민심을 어르고, 이란과 전쟁을 불사할 듯 나오는 부시 행정부를 견제해 파국을 막으려는 몸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우디를 정점으로 한 수니파 나라들을 묶어 이란에 대항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이 쉽게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한 백악관 관리는 국빈만찬 취소 통보에 “사우디가 그렇게까지 멀리 나가 놀랐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