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군부 요청대로 1차투표 무효화
정부여당, 투표강행와 조기총선 응수
정부여당, 투표강행와 조기총선 응수
“머리에 히잡을 쓴 영부인이 있는 대통령궁에는 들어갈 수 없다.”
터키 군 지도부는 유럽 극우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지난달 27일 야당들의 거부에 의한 대선 1차 투표 부결과 군부의 정치 개입 위협, 29일 100만명의 반정부 시위, 이달 1일 헌법재판소의 1차 투표 무효 결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는 정교분리에 집착하는 터키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세속주의 성향이 작용하고 있다.
무슬림 전통에 따라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히잡에 대한 태도는 정교분리를 철칙으로 삼는 세속주의냐, 이슬람을 정치와 생활 원리로 받아들이는 이슬람주의냐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번 사태에서도 히잡이 한 배경이 됐다. 여당인 정의개발당 소속으로, 단독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압둘라 귈 외무장관의 부인이 히잡을 쓰는 것에 세속주의적 유권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귈 장관은 “우리의 다름은 우리의 풍부함을 보여준다”며 두 진영의 공존을 미화했다. 그러나 세속주의의 대들보인 군부는 쿠데타 위협으로, 헌법재판소는 1차 투표 무효화로 그를 퇴짜놨다.
2002년 총선 승리로 총리와 국회의장을 맡은 정의개발당에 ‘최후 보루’인 대통령직까지 내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대통령은 실권은 별로 없지만, 군 최고통수권자라 군부 반발이 특히 심하다. 수도 앙카라의 기업인들도 귈 장관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정의개발당은 세속주의 헌법을 지키겠다고 공언하지만, 세속주의 진영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이슬람주의를 정치에 끌어들일 음모를 꾸민다고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모두 히잡을 쓰는 등 자유를 뺏긴다고 주장한다. 두 진영의 대결은 오스만튀르크제국으로 기독교세계에 맞선 터키족 전통과, 1차대전에서 패한 나라를 구하고 급진적 서구화·세속화를 단행한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남긴 유산의 충돌이다. 헌법도 오스만제국 장교 출신으로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타튀르크에게 충성심을 표현하는 군부에 나라의 통합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97년 탱크를 거리를 메워 첫 이슬람주의자 총리를 몰아낸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중동에 부는 이슬람근본주의 바람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터키인들의 ‘이슬람 형제애’를 자극했다. 유럽연합이 터키의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반서구 감정을 키웠다. <뉴욕타임스>는 신앙심 깊은 농촌 사람들이 경제발전에 따라 도시 중산층으로 성장해 이슬람주의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세속주의 정당의 대표인 공화인민당은 지지율이 여당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의원 550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지 않은 1차 투표는 무효라고 선언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정면충돌 위기는 한 고비를 넘겼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2일 조기총선을 6월24일에 치르자고 의회에 제안했고, 필요하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도록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여당이 대통령 자리를 포기해 타협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점쳤다. 그러나 귈 장관은 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히며 3일 1차 투표를 다시 치르겠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민주주의에 대한 총격”이라고 비난해, 이번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2002년 총선 승리로 총리와 국회의장을 맡은 정의개발당에 ‘최후 보루’인 대통령직까지 내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대통령은 실권은 별로 없지만, 군 최고통수권자라 군부 반발이 특히 심하다. 수도 앙카라의 기업인들도 귈 장관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정의개발당은 세속주의 헌법을 지키겠다고 공언하지만, 세속주의 진영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이슬람주의를 정치에 끌어들일 음모를 꾸민다고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여성들은 모두 히잡을 쓰는 등 자유를 뺏긴다고 주장한다. 두 진영의 대결은 오스만튀르크제국으로 기독교세계에 맞선 터키족 전통과, 1차대전에서 패한 나라를 구하고 급진적 서구화·세속화를 단행한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남긴 유산의 충돌이다. 헌법도 오스만제국 장교 출신으로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타튀르크에게 충성심을 표현하는 군부에 나라의 통합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1997년 탱크를 거리를 메워 첫 이슬람주의자 총리를 몰아낸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중동에 부는 이슬람근본주의 바람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터키인들의 ‘이슬람 형제애’를 자극했다. 유럽연합이 터키의 가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도 반서구 감정을 키웠다. <뉴욕타임스>는 신앙심 깊은 농촌 사람들이 경제발전에 따라 도시 중산층으로 성장해 이슬람주의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세속주의 정당의 대표인 공화인민당은 지지율이 여당의 절반도 안 된다. 하지만 의원 550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지 않은 1차 투표는 무효라고 선언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정면충돌 위기는 한 고비를 넘겼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2일 조기총선을 6월24일에 치르자고 의회에 제안했고, 필요하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도록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여당이 대통령 자리를 포기해 타협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점쳤다. 그러나 귈 장관은 사퇴 의사가 없다고 밝히며 3일 1차 투표를 다시 치르겠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민주주의에 대한 총격”이라고 비난해, 이번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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