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 확대냐 세속주의 고수냐
외신들 이슬람성향 여 승리 점쳐…군부선 ‘84년 전통’ 붕괴 우려
외신들 이슬람성향 여 승리 점쳐…군부선 ‘84년 전통’ 붕괴 우려
‘세속주의 전통 고수냐, 이슬람국가화냐.’
오는 22일 총선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눈길이 터키로 쏠리고 있다. 기독교 유럽사회와 이슬람 중동사회를 잇는 다리인 터키의 정치적 변화는 주변 지역의 정치적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이슬람주의 성향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의 넉넉한 승리를 점치고 있다. 〈비비시〉(BBC) 방송은 지난 14~15일 여론조사에서, 정의개발당이 42.6%의 득표율로 550석 가운데 310~340석을 가져갈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2002년 총선에서 얻은 365석과 비슷하다. 정의개발당 집권 이후 연평균 7%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점도 중산층의 지지를 보탰다. 세속주의 야당인 공화인민당은 100~120석, 민족주의 성향 민족행동당은 70~9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단독 집권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며 배수진까지 쳤다.
일정을 4개월 앞당겨 치르는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 총리의 승부수라는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집권당 압둘라 귈 외무장관을 대통령으로 밀었다가 “필요하다면 태도와 행동을 분명히 할 것”이라는 군부의 압박과 대규모 시위에 밀려 뒷걸음질친 그는 이번에 압승하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도록 제도를 고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부유층과 지식인, 군인들이 주축인 엘리트집단은 정의개발당이 이번에도 압승하면 84년을 이어온 세속주의 전통이 기반을 잃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세속주의 세력은 ‘최후 보루’인 대통령직마저 빼앗길 위기에 몰리는 것이다. 이는 “히잡 쓴 영부인”을 맞을 수 없다는 군부가 이슬람주의자를 최고통수권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세속주의 세력은 ‘군부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여론의 역풍까지 만나 더욱 궁지에 몰렸다. 1923년 종교의 정치와 일상생활 개입을 차단한 세속주의를 기반으로 터키공화국을 세운 케말 아타튀르크의 ‘유훈’을 받든다는 군부는 과거 네차례의 쿠데타와 정치 개입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을 꺾었다. 그러나 이제 국내외 반발이 심해 그러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7일 무소속으로 이스탄불에서 출마한 사업가가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숨져 선거 전야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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