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두번째 핵시설로 추정되는 콤 인근을 촬영한 위성사진. 미국의 위성사진 전문업체 디지털글로브가 제공한 것으로, 문제의 시설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사일 기지가 있던 곳에 위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IAEA 결의안 채택 이틀만에 “이중기준” 정면비판
국제사회 “고립 행위” 경고…제재카드 없어 고민
국제사회 “고립 행위” 경고…제재카드 없어 고민
서방과 극한대결도 불사하며 핵개발을 밀어붙이는 이란의 속내는 뭘까.
이란은 29일 전격적으로 우라늄 농축시설 증설을 선언하고 나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7일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 비난 결의안을 채택한 지 이틀 만의 초강수 맞대응이다.
이란 정부는 이날 각료회의에서 우라늄농축시설 10곳을 증설하기로 하고 자국의 원자력기구에 이행을 지시했다고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이 보도했다. 이미 부지가 확정된 5곳을 두 달 안에 착공하고 나머지 5곳도 장소를 물색하겠다는 것이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2만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선 현재 나탄즈 발전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델의 원심분리기가 50만개 필요하다”며 “연간 250~300t의 핵연료 수요를 맞추려면 신형 고속원심분리기들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 의회는 이날 자국 정부에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력 수준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통과시켰다. 이란 의회는 성명에서 “국제원자력기구의 결의안 채택을 이중기준이자 정치적 행위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서방 국가들은 즉각 이란 정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백악관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은 “이것은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또하나의 중대한 위반이며, 이란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또다른 사례”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도 “이란은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 대신 도발을 선택했다”고 비난했다.
서방 강대국 및 국제원자력기구와 이란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있다. 이란 의회의 알리 자니아니 하산루 의원은 29일 <이르나> 통신 인터뷰에서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 핵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함으로써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 전체가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의 과학자들이 이룬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 분야의 성과를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란 원자력기구의 최고위급 관계자는 “이란은 애초 우라늄농축시설 추가 확보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는데 국제사회의 결의안이 우리의 결정을 강요했다”며 “새 농축시설들은 공습을 비롯한 어떤 위협에도 안전하도록 산 속에 건설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30일 전했다.
반면 국제원자력기구의 한 관리는 30일 <뉴욕타임스>에 “(이란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 이란의 핵 열망이 무엇이든 (농축시설 10곳은) 필요치보다 과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도 우라늄농축시설을 단지 한 곳만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아예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 가능성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2007년 9월 시리아의 핵의혹 시설을 기습폭격해 초토화한 바 있다.
이란의 전력사정이 넉넉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인근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수력발전소들은 지난해 심각한 가뭄으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한여름 폭염 시간대에 단전사태가 잇따랐다. 미국이 주도한 경재제재 때문에 세계 2위의 산유국이면서도 원유정제시설이 부족해 석유나 휘발유를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6월 대선 직후 선거부정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던 테헤란 시민들은 특정시간에 가전제품을 일제히 작동시켜 정전사태를 유발하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이런 이란에게 핵개발 프로그램은 전력공급을 확충하고 핵무기보유 가능성도 과시하는 ‘양수겸장’의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로선 이미 높은 수위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더욱 강도높고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스라엘·인도 등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의 핵무기 보유는 문제삼지 않고 있다는 ‘이중기준’ 지적에도 자유롭지 않다. 군사적 해결 수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란 핵프로그램에만 특별한 예외를 허용할 경우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이 더욱 꼬이게 된다. 이란이 모험에 가까운 강경책을 펼치는 배경에는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이란의 전력사정이 넉넉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인근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는 수력발전소들은 지난해 심각한 가뭄으로 가동이 중단되면서 한여름 폭염 시간대에 단전사태가 잇따랐다. 미국이 주도한 경재제재 때문에 세계 2위의 산유국이면서도 원유정제시설이 부족해 석유나 휘발유를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 6월 대선 직후 선거부정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던 테헤란 시민들은 특정시간에 가전제품을 일제히 작동시켜 정전사태를 유발하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이런 이란에게 핵개발 프로그램은 전력공급을 확충하고 핵무기보유 가능성도 과시하는 ‘양수겸장’의 카드인 셈이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로선 이미 높은 수위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더욱 강도높고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스라엘·인도 등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의 핵무기 보유는 문제삼지 않고 있다는 ‘이중기준’ 지적에도 자유롭지 않다. 군사적 해결 수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란 핵프로그램에만 특별한 예외를 허용할 경우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이 더욱 꼬이게 된다. 이란이 모험에 가까운 강경책을 펼치는 배경에는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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