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투입에 이어 유화책…민주화 시위 기로에
시리아에서 지난 18일부터 본격화한 민주화 시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가 군까지 투입하면서 민주화 시위는 잦아든 반면 대규모 친정부 시위대마저 등장했다. 정부가 내각 총사퇴 등 민주화 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민주화 시위가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시리아 국영 텔레비전은 29일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이 나지 오타리 총리가 이끄는 32인의 내각 총사퇴를 수용했다”고 보도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하지만 차기 내각이 꾸려질 때까지 과도 정부를 이끌 오토리 총리는 곧바로 재임명됐다. 현 내각은 2003년 꾸려졌다. 아버지한테서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바샤르 아사드는 반세기 넘게 부자 세습 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유피아이>(UPI) 통신은 “내각 총사퇴는 다르아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1주일 넘게 지속되면서 예상됐던 일”이라고 전했다. 불안을 느낀 아사드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의 불만을 달래려는 유화책의 하나로 내각 교체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다. 그에 앞서 아사드 정권은 1963년 선포된 국가 비상사태 해제와 공공 부문 노동자의 임금 인상 등을 약속했다. 또 정당과 언론의 자유를 넓히는 법률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질적 개혁 조처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2000년 권좌에 오른 이후 가장 혹독한 정치적 시련을 겪으면서도 침묵해왔던 아사드도 30일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시리아 관영 <사나> 통신이 이날 전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시리아 관리들의 말을 빌어 “바트당 일당 독재에서 더 많은 자유와 개혁을 요구하는 데 대한 응답으로 지난주부터 일련의 개혁조처에 대해 보다 상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각 총사퇴 발표가 나오기 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데이르에즈조르, 하살카 등지에선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친정부 시위를 벌였다. 다마스쿠스 사바바흐라트 광장에선 아사드 지지자들이 “우리는 바샤르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있다”고 외쳤다.
반면에 민주화 시위는 이틀째 잠잠했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다르아나 지난 주말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라타키아 등지엔 군대가 처음으로 시내에 배치돼, 정부 건물과 바트 당사 등 주요 건물 경계에 나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시리아를 뒤덮었던 ‘정권 퇴진’ 외침이, 아사드 정권의 유화책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휴먼라이츠워치’는 18일 이후 시리아 곳곳에서 일었던 반정부 시위로 60명 이상이 숨졌다고 밝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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