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시 막판 연립정부 구성 제안
군부·시위 지도자 만나 대책논의
헌정중단·의회해산·과도정부 추진
지지·반대 시위 충돌 23명 사망
군부·시위 지도자 만나 대책논의
헌정중단·의회해산·과도정부 추진
지지·반대 시위 충돌 23명 사망
3일 오후 시계가 4시30분을 가리켰다. 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에게 준 ‘48시간’이 막 지났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선 흥분이 최고조에 올랐다. 반정부 시위대는 이집트 국기를 높이 흔들며 무르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반면 카이로 동부의 옛 도심지 라파 모스크 광장에선 분노가 무겁게 깔렸다. 무르시의 지지자들은 궁지에 몰린 대통령을 그대로 물러나게할 순 없다며 끝까지 맞서자고 다짐했다. 마감시한을 앞두고 긴장이 높아지면서 무르시 지지자와 반대자 간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2일 밤부터 3일 오후까지 하룻동안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집트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6월30일부터 지금까지 39명이 숨졌다.
위기에 처한 무르시는 막판에 ‘연립 정부 구성’이라는 카드를 뽑았다. 대통령실은 군이 정한 최종시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앞으로 실시될 총선을 관리하기 위해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의회에 제출할 헌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독립적인 위원회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헌법적 정당성이 있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무르시 진영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의 대변인인 아이만 알리는 <로이터> 통신에 “대통령은 이집트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배반하기보다는 차라리 헌법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나무처럼 서서 죽는 게 낫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무르시는 전날 밤엔 텔레비전을 통해 45분간 ‘격정 연설’을 했다. 그는 연단을 내리치고 주먹을 흔들며 “독재자의 추종자들이 합법적인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목숨을 걸고 헌정질서를 지키겠다”고 외쳤다. 무르시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군은 최후통첩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군부는 이날 무르시를 비롯해 무슬림형제단의 고위 지도자들에 대해 해외여행을 금지했다. 또한 이 단체의 간부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했다. 군부는 이날 낮 국영 방송사도 장악했다. <에이피>(AP) 통신은 3일 낮 군의 정보국 간부들이 방송사 뉴스룸 안에까지 들어와 뉴스제작 과정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국영방송은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정보부 장관이 관장하는 기관으로, 이 방송은 그동안 친무르시 성향의 보도를 주로 해왔으나 최근 이틀동안 논조가 급격히 바뀌었다. 군은 또한 이날 반정부 시위 지도자들과 만나 ‘무르시 이후’ 계획을 논의했다. 이 자리엔 압둘파타흐 시시(59)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고위간부들과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1)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이슬람 성직자들, 콥트 기독교 성직자들이 함께했다.
군의 향후 대략적인 행동 계획은 일찌감치 언론을 통해 새나갔다. <에이피>와 <비비시>(BBC) 등 외신들은 무르시가 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군은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헌정을 중단시키고, 역시 이슬람주의 세력이 다수인 의회를 해산하며, 대법원장이 이끄는 과도 행정부를 꾸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군은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할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고, 마히르 비하이리 대법원장을 수장으로 한 행정부를 꾸리되 여기엔 국방장관, 야당 지도자, 청년단체, 콥트 기독교, 온건 이슬람 지식인 그룹을 참여시킬 계획이라는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해 무르시 진영은 ‘유혈충돌 없는 쿠데타는 불가능하다’며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무르시호의 침몰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2일까지 외교부·스포츠부 등 장관 6명이 사임했고, 대통령 대변인 2명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 한때 무르시와 동맹을 맺은 이슬람 수니파의 극보수 분파인 살라피그룹도 조기 선거를 지지한다며 무르시를 버렸다. 줄곧 무르시와 갈등을 빚었던 사법부도 반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날 이집트 최고사법위원회는 무르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해임한 압델 메귀드 마무드 검찰총장에 복귀 결정을 내렸다. 전 대통령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에 임명됐던 마무드 총장은 무르시와 갈등을 빚다 해임됐던 인물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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