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범위·절차·감독권 등 곳곳 ‘지뢰’
러, 실질 영향력 행사 가능한지 의문
러, 실질 영향력 행사 가능한지 의문
미국 등의 압력에 강경하게 맞서던 시리아가 ‘화학무기 폐기’라는 러시아의 중재 카드를 덥석 받은 데서도 알 수 있듯, 러시아는 시리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켰다. 러시아는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폐기하는 실질적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영국 <가디언>은 10일 마이클 앨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의 말을 따서 “러시아의 중재안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러시아가 과연 시리아에 (화학무기 폐기라는) 영향력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시리아는 1971년 시리아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은 뒤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러시아는 시리아 타르투스항에 해군기지를 두고 있고, 시리아는 러시아에서 무기를 수입해왔다.
엘먼 연구원의 우려는 러시아의 외교적 영향력이 아니라, 폐기 대상의 범위·절차·기간·감독권 등 물리적으로 러시아의 중재안을 실현하는 게 어렵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폐기 대상에 화학무기만 해당되는지, 생산시설까지 포함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폐기 과정에 따르는 위험요소를 어떻게 통제할지, 누가 이 절차를 관할할지 등의 문제다.
시리아엔 화학무기와 원료 물질이 40~50곳에 분산 저장돼 있고, 총량이 1000t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전략정보 분석업체인 <스트랫포>는 9일 저장시설 중 대부분은 시리아 정권이 통제하는 지역에 있지만 일부는 반군과 교전 지역에도 저장돼 있으며 이는 반군의 공격 표적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화학무기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를 운반·폐기하는 과정에서 유출·폭발 등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제안에 진정성을 담은 화답을 하는 첫 걸음은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가입하는 것이다. 협약 가입 뒤엔 무기의 종류와 비축분 등 세부사항을 밝히고,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진상조사를 거쳐 소각시설에서 불태우거나 다른 화학물질과 중화시켜 폐기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비용도 시리아가 내야 한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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