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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영, 아랍 두 부족-프-유대 4중계약 ‘중동분쟁 불씨’

등록 2013-12-31 16:25수정 2013-12-31 16:25

중동대전 <9>
알사우드, 성지 함락하고 아라비아 상징적 통치자
하시미테 형제는 각각 이라크와 요르단 할양 받아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에 결정적 기여를 한 와하브파의 종교군대 이콴의 진격 장면. 이콴은 극단적 보수주의 이슬람교리에 바탕한 과격성과 종교적 헌신으로 알사우드 가문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기여했으나, 알사우드 가문의 권력까지 위협하다가 진압된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에 결정적 기여를 한 와하브파의 종교군대 이콴의 진격 장면. 이콴은 극단적 보수주의 이슬람교리에 바탕한 과격성과 종교적 헌신으로 알사우드 가문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기여했으나, 알사우드 가문의 권력까지 위협하다가 진압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롱샷 카메라 기법을 이용한 명장면이 유난히 많다. 주인공 로렌스(피터 오툴)가 오스만터키 군을 협공하기 위한 찾아간 아랍의 부족장 알리(오마 샤리프)는 광활한 사막의 풍경 속에서 한 점으로 등장한다. 낙타를 탄 그의 모습이 다가와 화면을 꽉채울 때까지 카메라는 그를 멀리서부터 계속 잡는다. 광활한 사막의 한 점에서 시작해 스크린을 꽉채우는 알리의 모습은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 무대에서 잊혀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알사우드 가문의 부족 등 아리비아 반도의 베두인 부족들을 상징하는 듯 하다.

1차대전의 포연이 중동 지방에까지 미치던 1910년대 독일 편에 선 터키를 제압하려는 영국은 아라비아 반도 사막의 부족 세력들에게 접근해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약속하며 터키에 대한 봉기를 부추킨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실제 주인공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영국이 이 목적을 위해 아라비아 반도에 파견한 첩보장교 중의 한명이었다. 로렌스 등이 접촉한 유력한 두 부족 세력 중의 하나가 알사우드 가문 부족이었다. 로렌스가 직접 공작을 해서 터키에 대한 봉기에 나선 세력은 당시 이슬람의 영적 중심지 메카를 다스리던 하시미테 가문이었다. 알사우드 가문은 나중에 이 하시미테 가문과 경쟁하며 아라비아 반도의 패권을 차지한다.

1차대전 때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 부족들을 오스만터키에 맞서 봉기시키는 공작을 하려고 파견됐던 영화 의 실제 주인공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그는 알사우드 가문의 경쟁 부족인 하시미테 부족을 설득해 봉기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1차대전 때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 부족들을 오스만터키에 맞서 봉기시키는 공작을 하려고 파견됐던 영화 의 실제 주인공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그는 알사우드 가문의 경쟁 부족인 하시미테 부족을 설득해 봉기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40명 특공 전사 야밤 틈타 성벽 넘어 기습해 리야드 총독 참수

로렌스로 상징되는 영국 세력이 아무도 돌보지 않던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한 가운데까지 오기 전 알사우드 가문의 부족은 과거의 영화를 거의 잃고 사막의 남루한 부족으로 전락했었다. 19세기초 오스만터키 제국의 중심부까지 위협하다가 터키군에 박살이 나서 다시 아라비아 사막 한 가운데로 돌아갔던 알사우드 부족은 1890년 근거지인 리야드마저 다른 부족에게 함락당하며 다른 부족 근거지로 피난가서 더불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였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창건한 압둘 아지즈는 15세 때 리야드가 함락되어 현재의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를 거치며 10년 이상이나 난민 생활을 했다. 피난 생활의 설움과 간난신고를 겪고 성장한 압둘 아지즈는 20세를 갓넘긴 1901년 대담한 군사공격을 기획한다. 자신들의 부족 고향인 네지드를 탈환하려는 특공대 조직에 나섰다. 자신의 친척들과 남아있던 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사우드 가문과 동맹을 맺은 와하브파의 충실한 신도들과 함께 리야드 등 네지드 지역 탈환에 나서는 성전을 선포한 것이다. 압둘 아지지의 이 특공대 모집에 기껏해야 최고 200명이 모였다고 한다. 압둘 아지즈는 라만단 의식이 한창이던 1902년 1월15일 밤 약 40명의 돌격대와 함께 알라시드 가문 부족이 장악했던 리야드 성벽을 넘어 기습한다. 압둘 아지즈와 특공대는 리야드 총독을 그 관저 앞에서 참수하고 도시를 장악한다.

 알사우드 가문이 세운 3번째 사우디 국가이자,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출발이었다. 40명의 전사로 리야드를 탈환했다는 소삭이 사막의 모래 폭풍을 타고 아라비아 반도 전역으로 퍼지자, 과거 알사우드 가문의 추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2년 안에 곧 네지드 지역 절반을 탈환하자, 쫓겨난 라시드 부족 가문은 오스칸터키 제국에 군사적 보호를 요청했다. 압둘 아지지 군대는 오스만터키 군과의 첫 전투에서 패배하자, 곧 게릴라전으로 전환해 터키 군을 교란했다. 1912년이 되자, 압둘 아지즈는 네지드 지역과 아라비아 동부 해변 지역 정복을 완성한 거대 세력으로 떠올랐다.

압둘 아지즈의 성공은 그의 군사적, 정치적 능력과 카리스마에다가, 200년전에 동맹을 맺은 와하브파 추종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그가 네지드 정복을 완성한 뒤 창설한 ‘이콴’이 그 조직이다.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와하브파의 교리를 철저히 수용했다. 와하브파의 추종자들은 ‘형제’라는 뜻의 이콴이라는 헌신적인 종교군대로 답례했다. 하얀 터번과 잘 다듬은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상징되는 이콴은 반독립적인 종교전사들의 전위부대였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200년 전 자신의 선배들처럼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와하비의 이름으로 정복한 곳마다, 술과 담배, 화려한 장식의 비단, 도박, 마술 등을 금지했다. 그들은 심지어 현대문명의 이기들인 전화, 라디오, 자동차도 신의 법에 위배된다며 비난했다. 그들의 영토에 트럭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콴들은 트럭에 불을 지르고 운전사를 맨발로 도망가게 했을 정도였다.

알사우드 부족에 접근해 터키에 봉기를 부추킨 영국 첩보장교 윌리엄 섹스피어 대위와 그의 활약을 그린 포스터.
알사우드 부족에 접근해 터키에 봉기를 부추킨 영국 첩보장교 윌리엄 섹스피어 대위와 그의 활약을 그린 포스터.

영국, 유력 두 부족 따로 따로 부추겨 터키 제압 선봉대로

로렌스로 대표되는 영국 세력이 아라비아 사막의 부족들에게 접근했을 때가 바로 압둘 아지즈와 이콴들이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과 이에 바탕한 새로운 이슬람신정국가 수립을 꿈꾸고 있었다. 이들에게 부패하고 불경한 오스만터키는 이슬람의 영광을 재현할 신정국가 설립를 위해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다. 또 성지 메카를 통치하는 하시미테 가문 역시 타고넘어야 할 경쟁자였다. 하시미테 가문 역시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왕조를 꿈꾸고 있었다. 영국 외무부는 윌리엄 섹스피어 대위를 파견해 압둘 아지즈를 설득했고, 영국과 알사우드 가문은 1915년 다린 조약을 맺는다. 당시의 알사우드 가문 영토를 영국 보호령으로 하고, 향후 사우디 국가의 영토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이다. 알사우드 부족은 대신 오스만터키 제국와 동맹을 맺은 알라시드 부족과 전쟁을 계속 해주기고 했다. 알사우드 가문으로서는 숙적 알라시드 부족과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영국의 지원을 받고 수행할 수 있는데다, 아라비아 반도의 미래 통치세력으로 인정받는 일석이조의 거래였다.

문제는 영국이 알사우드 가문의 경쟁자 하시미테와도 비슷한 약속을 했다는거다. 하시미테 가문에 파견된 영국 첩보장교가 바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주인공 이었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였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영국과의 거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 쪽은 하시미테 가문이었다. 하시미테 가문의 수장 후세인 이븐 알리의 두 아들 파이잘과 압둘라는 적극적으로 나서 터키족에 대한 아랍 부족들의 반란을 선동해서, 영국이 다마스쿠수에서 바그다드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파이잘과 압둘라가 아라비아의 중심 지역인 다마스쿠스에 먼저 입성하자, 알사우드 가문 및 이콴 동맹은 본격적으로 하시미테 가문과의 갈등에 들어간다.

프랑스와 전후 중동 영토 분할 밀약…유대와는 시오니즘 인정 선언

영국은 아라비아의 유력한 두 부족과 이중계약을 맺는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영국이 두 부족과 철석같은 약속을 맺은 시점인 1916년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조르주 피코는 비밀리에 만나, 전후 중동을 자신들의 영토로 분할하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맺는다. 여기에 덧붙여 영국은 1917년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유대인 은행가 라이오넬 로스차일드 경에게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유대국가 건립 운동인 시오니즘 운동을 인정하는 밸푸어 선언을 한다. 영국은 중동 땅에 4중의 중복 계약을 하며, 향후 중동분쟁의 씨앗을 뿌린다.

영국의 다중 플레이에 가장 피해를 본 쪽은 결국 팔레스타인 주민들이었으나, 그 다음의 피해자가 하시미테 가문이다. 영국의 다중 플레이에서 실속을 차린 쪽은 알사우드 가문이다. 알사우드 가문은 터키군과의 직접적으로 싸우기 보다는 자신들 근거지의 숙적인 알라시드 가문과 싸우며 제압해, 영토를 더욱 늘린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아라비아 반도 내륙의 사막 지대를 중심으로 영토를 늘려 외부 세력의 제재를 별로 받지 않았고, 영국 등 서방 강대국들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걸프 지역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쓸모없이 보였던 사막은 나중에 세계 최대의 유전지대로 바뀌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가 된다. 그리고 1925년 하시미테 가문이 700년간이나 통치하던 성지 메카를 함락하고 아라비아 반도의 상징적인 통치자가 된다. 하시미테 가문의 수장 후세인 이븐 알리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대신 작은 아들 파이잘은 지금의 이라크, 큰 아들 압둘라는 요르단을 영국으로부터 할양받게 된다. 중동 지역을 더 이상 직접 통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영국이 과거의 동맹 세력에게 호의를 베푼 셈이다.

건국 동맹자 이콴세력 반란 진압하고 현대 사우디왕국 선포

알사우드 가문이 아라비아 반도 영토의 80%를 차지하는데 이콴의 헌신적 전투력이 밑거름이 됐음을 물론이다. 메카에 이어, 메디나와 제다의 점령에 이콴은 전위부대가 됐다.

하지만, 압둘 아지즈와 세속 권력들은 이콴의 종교적 열정이 제어할 수 없는 과격함이라는 것을 곧 느끼게 된다. 메카를 점령하고 왕국 건설의 기반을 닦으려고 각종 현대적 기제들을 도입하려던 압둘 아지즈에게 이콴들은 도전했다. 이콴은 압둘 아지즈가 도입하려던 전화, 자동차, 전보를 이슬람에 대한 배신이라고 공격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통일된 종교제국 완성을 위해서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공격했다. 이는 압둘 아지즈의 국제적 입장을 극도로 곤란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영국의 분노를 샀다. 알사우드 가문과 영국의 협정으로 설정한 사우디-이라크 중립지대에서 1927년 이라크 군을 공격하자, 영국은 그 보복으로 네지드 지역을 폭격했다. 이콴들은 1928년에는 쿠웨이크를 급습하기도 했다.

압둘 아지즈는 이콴의 지도자를 폐위시키고도 이콴의 반란이 계속되자, 결국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대결에 나섰다. 1929년 3월 아라비아 북부의 사빌라에서 압둘 아지즈 군대는 현대적 군비로 무장하는 한편 영국의 항공 지원을 받고서, 이콴 군대들을 분쇄한다. 이 사빌라 전투는 이콴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현대적 문명의 무기들에 의해 결판났다. 압둘 아지즈의 군대는 약 200대의 군용차량과 현대 기관총으로 무장해서, 칼과 낙타에 의존하던 이콴 군대를 여지없이 분쇄했다. 이콴의 반란을 진압한 압둘 아지즈는 1932년 자신이 왕으로 등극하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했다.

이콴의 반란과 진압은 200년 이상이나 지속된 사우드-와하비 동맹의 최대 위기였다. 와하비 세력의 핵심인 이콴의 반란을 진압하기는 했으나, 압둘 아지즈와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여전히 와하비파의 신자들이었고, 와하비파의 종교적 열정을 필요로 했다. 압둘 아지즈 국왕은 자신들의 왕가가 여전히 와하비파의 교리로 통치할 것임을 선포했고, 그들의 엄격한 교리를 사우디왕국 신민들의 생활에도 적용시킬 것임을 약속했다. 와하비파 교리를 감시하는 종교경찰도 창설하고, 와하비의 후예들과 성직자들에게 종교권력을 위임했다. 압둘 아지즈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이콴과 와하비파를 포용함으로써, 그들의 과격성을 통제하려는 전략을 취했다.

알사우드로 대표되는 세속권력과 와하비로 상징되는 종교권력과의 갈등과 협력은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특징짓는 첫 요인이다. 이 두 세력과 권력의 갈등은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초기 진정됐으나, 이 나라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시 점증한다. 그 갈등은 오일달러가 사우디에 쏟아지던 1970년대말 극적으로 고조되며, 그 분출구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찾게된다.

정의길기자 Egil@hani.co.kr

▶정의길의 중동대전 70년 http://plug.hani.co.kr/middleast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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