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베이트라히야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대피소에 주민들이 어린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몰려들고 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르포 울부짖는 가자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대피소 생활에 지쳐만 간다.(오른쪽) 이 대피소는 지난 19일 이스라엘의 폭격 경고 뒤 문을 열었다. 가자/김상훈 강원대 교수
폭격 심해 공습경고 전화도 무용
간단한 짐만 겨우 챙겨 대피소로
전기 끊기고 유엔 배급 식량도 부족
‘휴전 원하냐’ 질문엔 “끝까지 싸워야” 잠깐 폭격이 잠잠하던 21일 오전, 이즈마일과 남편은 필요한 물품을 챙기러 집을 찾아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집은 폭격으로 무너져 있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올 게 없었다. 서둘러 대피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가자지구의 대피소마다 피난민들로 이미 포화상태다.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가자지구에서 이미 1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는 추산한다. 지난 18일까지만 해도 3만명 정도였으나, 주말 동안 이스라엘군이 말 그대로 무차별 공습과 포격을 퍼부으면서 3일 만에 난민이 3배 넘게 불어났다. 22일까지 사망자 수가 600명에 육박하면서 대피소를 찾는 겁에 질린 난민들의 행렬은 급격히 늘고 있다. 어떤 가족은 폭격을 받을까봐 집을 떠났고, 어떤 가족은 집이 이미 폭격으로 무너져서 피난소로 왔다. 난민들은 69곳의 학교시설 등에 대피 중이다. 난민이 늘면서 대피소 상황은 열악해지기만 한다. 21일 찾아간 베이트라히야 대피소의 경우, 작은 교실 하나에서 40여명이 함께 자야 한다. 냉방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전기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지금은 이슬람의 금식월(라마단) 기간이라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진 후에만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버틴다. 하지만 해가 진 뒤 유엔으로부터 배급받는 음식의 양은 부족하기만 했다. 물도 유엔에서 제한 급수를 한다. 다시 집을 찾아가는 것은 ‘모험’이다. 초등학교에 대피해 있다가 필요한 물품을 챙기러 집을 찾았던 부부가 지난 20일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숨지기도 했다. 세 아들과 네 딸의 부모였다. 피난민 “휴전보다 자유 올 때까지 싸워야” 난민들은 유엔 깃발이 걸린 학교 등에 대피해 있지만, 이곳마저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몇분 간격으로 폭발음이 시설을 뒤흔들고 아이들은 까무러치게 놀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노출된 주민들이 몸을 의지할 다른 곳은 없다. 난민들은 낮에는 병원 등에 찾아가 친지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밤에는 대피소로 와서 잠을 청한다. 이제서야 간단한 가재도구와 물을 싸들고 도착하는 가족들도 있다. 이틀 전 이스라엘의 경고 전화를 받았지만 포격이 심해 도저히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집 근처에 떨어지는 포탄의 굉음을 들으며 공포에 떨다가 폭격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겨우 빠져나왔단다. 이 가족의 어머니인 시암(58)한테 ‘휴전이 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자유가 올 때까지 이스라엘과 싸워야 한다”고 대답한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자유가 올 수 있다면, 고생할 수 있다. 어차피 평상시에도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때문에 일자리도 없다”고 말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채 언제든 무차별 폭력에 노출돼 살아야 하는 삶이 어머니를 강하게 만든 것 같다. 대피소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던 두 명의 소년에게도 ‘휴전이 되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봤다. 16살 동갑내기 두 명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모하메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너무 지쳤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이 안타까우니 휴전을 원한다고 했고, 모사브는 이스라엘을 “무자비한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답했다. 학교에 딸려 있는 놀이터가 그나마 피난온 어린이들의 위안거리다. 별다른 놀이기구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해맑게 안전 그물망에 들어가 뛰어놀았다. 그물망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 안에 갇혀 살다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집까지 잃고 더 좁은 장벽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가자지구 김상훈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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