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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바그다디를 스타로 만들어준 건 부시 바로 너야

등록 2014-10-03 20:28수정 2014-10-05 19:03

[토요판] 특집 / 중동전쟁, 주역 4인의 대화
▶ 중동에서 칼리프(신의 대표자) 국가를 자칭하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약칭 IS)는 돈과 땅, 무기, 국제적 네트워크로 이슬람주의 무장운동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했다. 이슬람국가는 테러와의 전쟁, 특히 이라크전쟁의 산물이다. 이슬람국가의 탄생에 역할을 했던 알카에다 전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미국 전 대통령 조지 부시,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 이슬람국가 지도자 아부 바크르 바그다디의 ‘가상 대담’을 마련했다.

기자 모시기 힘든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네요. 중동에서 벌어지는 난마와 같은 전쟁 상황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심 끝에 여러분들을 모셨습니다. 이 난마를 만든 장본인들이 직접 설명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죠.

일동 (이구동성으로) 나를 저 친구들과 같이 도매금으로 취급하지 마. 저 친구들 때문이지, 나 때문이 아니야.

바그다디 먼저 이거 확실히 하자고. 1차대전 이후 그어진 중동의 지도가 이슬람국가로 바뀌고 있어. 미국과 중동의 무능한 정부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슬람주의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어. 이슬람국가는 영토와 주민, 돈, 무기에다가 행정력도 발휘하고 있다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1946~)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1946~)
부시 (한숨) 근데… 이제 와서 뭐 숨기겠어. 내가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침공 등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잘 몰라. 당신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일동 어련하겠어. 탈레반을 록밴드라고 알았던 부시 당신이 뭘 알겠어. 미국 사람들 무던해, 저런 친구를 대통령으로 8년 동안 끼고 살았으니.

빈라덴 잘 알다시피 나는 사우디 최대 재벌의 아들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어. 내가 왜 아프간 토라보라의 동굴에서 개고생하다가 미군 특공대들한테 죽었겠어? 후세인 같은 이슬람 세계의 무능하고 부패한 세속주의 독재자들, 부시 같은 멍청한 미국 지도자들이 개판쳤기 때문이지. 특히 후세인, 당신 같은 아랍의 세속주의 독재자들이 나를 반미성전으로 결정적으로 이끌었어!

후세인 그래, 내가 죽일 놈이다. 이미 부시 당신에게 잡혀서 죽었지만, 나도 억울해. 우리들도 잘해보려고 했어. 세속주의 독재자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으로 불러줘. 따지고 보면 우리는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원조 선배로 하여, 지금 내전으로 피똥 싸는 고생을 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까지 이어지지. 봉건적 잔재가 여전한 이슬람 세계를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했는데, 모두 말로가 안 좋았어. 시대착오적인 이슬람주의자들과 미국의 정책 실패 때문이었지.

“9·11테러는 이집트 감옥에서 시작됐다”

현대 중동은 1차대전(1914~1918년) 뒤 이 지역의 패권국이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해체되면서 형성됐다. 1차대전 때 연합국인 영국은 독일의 동맹국에 가담한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아랍 부족들을 궐기시키면서, 각 부족들에게 통일된 아랍국가를 약속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1915년)을 맺고, 오스만튀르크의 영토를 나눠 가지려 했다. 영국은 또 밸푸어 선언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의 독립국가 건설도 약속했다. 영국 등의 이런 다중적인 약속이 현대 중동분쟁의 씨를 뿌렸다. 1차대전 뒤 패전한 오스만튀르크가 해체됐다.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군부 주도로 터키 공화정(1923년)이 수립됐고, 완전한 세속주의 근대화 노선을 취했다.

오스만튀르크 영토에 있던 아랍의 각 부족들도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령을 거쳐서 1920년대 이후 차례로 독립했다. 현재의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을 형성했다. 아랍의 국가들은 처음에 왕정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1949년에 시리아를 시작으로 이집트(1952년), 이라크(1958년) 등에서 잇따라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쿠데타가 성공한 아랍 국가들은 세속주의 근대화 노선을 표방했다. 특히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인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아랍 세계의 지도력을 장악했다. 이들 국가는 이스라엘과의 4차례 전쟁에 패하고 경제개발도 이뤄지지 않아 대중들의 지지를 잃고 독재권력으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을 시작으로 이슬람주의가 대중에 파고들었다. 나세르 등 세속주의 정권들은 이들을 혹독히 탄압했다.

오사마 빈라덴 전 알카에다 지도자 (1957~2011)
오사마 빈라덴 전 알카에다 지도자 (1957~2011)
빈라덴 근대화 세력이라고? 당신들 모두 부패한 독재자가 됐잖아! 나중에는 미국과도 야합하고, 물론 후세인 당신은 미국에 미운털이 박혀 죽었지만. 우리보고 과격하다고 하는데, 누가 그렇게 만들었어? 세속주의 독재자의 대표인 이집트의 나세르가 우리 선배 사이이드 꾸틉을 고문하고 교수형에 처하면서, 이슬람주의가 과격한 지하드주의로 바뀐 거 아니야? 9·11테러는 이집트의 감옥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있잖아!

현대 이슬람주의 원조는 이집트에서 1928년 하산 알 반나(1906~1949년)가 창설한 무슬림형제단이다. 애초 소년들의 방과후학교로 시작됐다. 무슬림형제단은 곧 ‘이슬람이 해답’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슬람주의 대중조직으로 발전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촉발된 1948년 1차 중동전쟁 때 자원병을 보내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아랍의 전체 문제로 만들면서 정치운동으로 본격 발전했다. 반나가 암살당한 뒤 무슬림형제단 세력은 사이이드 꾸틉의 주도로 나세르의 쿠데타에 협력했다. 꾸틉은 나세르가 집권 뒤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 근대화 노선을 내걸자, 반체제 인사로 돌아섰다. 꾸틉은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지하드(성전), 이를 위한 혁명적 전위들의 선도적 투쟁을 주장했다. ‘이슬람주의의 레닌’이라고 불리는 꾸틉은 결국 나세르에 의해 1966년 처형됐다. 나세르는 꾸틉이 항소하면 사면하고 교육부 장관직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꾸틉은 “나를 죽인다면, 내 말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처형당했다. 빈라덴 사후 현재 알카에다의 수장인 아이만 자와히리는 꾸틉이 죽을 때 15살의 나이로 이슬람주의 지하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들은 나중에 알지하드, 이슬람그룹 등 대표적 급진적 지하드주의 테러단체로 이어졌다. 이 조직들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다. 자와히리의 알지하드 등 이집트 지하드주의 세력들은 나중에 알카에다의 기반이 됐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1937~2006)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1937~2006)
후세인 우리 때문이라고? 과격 이슬람주의는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시작된 거야. 이봐 빈라덴! 당신,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잖아. 사우디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잖아. 사우디가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원하지 않았어? 사우디가 자신들의 꼴통 이슬람인 와하비즘을 이슬람 세계에 전파하고,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무자헤딘과 이슬람주의 세력을 팍팍 밀어줬잖아. 그리고 사우디의 뒷배는 누가 봐줬어? 미국 아니야? 따지고 보면 너희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사우디랑 미국의 지원을 받고 컸잖아.

이라크가 왜 쿠웨이트를 점령했냐고?

현대 사우디 왕국의 기원은 1700년대 중반 아라비아 반도 중부 네지드의 사우드 부족과 근본주의적 이슬람 율법사 무함마드 이븐 압둘와하브의 동맹에 있다.

와하브는 선지자 무함마드 시절의 이슬람 원형으로 돌아가자며, 이에 위배되는 모든 것과 싸우는 지하드를 주장하는 와하비즘을 전파했다. 이 와하비즘에 바탕한 사우드-와하브 정교동맹은 아라비아 반도를 휩쓸었다. 이들은 동맹을 유지하다가 20세기 초에 부활해, ‘이크완’이라는 종교군대를 앞세워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했다. 사우디 왕국은 정치권력은 사우드 왕가가, 종교권력은 와하브 후예들이 장악하고 와하비즘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주장하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거한 통치를 사실상 했다. 절도범은 손을 자르고, 종교경찰이 개인의 복장 등 사생활을 규율하고 있다. 사우디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석유가 폭등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와하비즘을 전세계에 전파했다.

특히 사우디는 1979년 이란에서 시아파들의 이슬람혁명이 성공하자, 이를 예방하는 한편 이슬람 세계의 종주권을 지키기 위해 와하비즘 수출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시아파에 반대하는 수니파 이슬람주의 세력도 적극 지원했다. 소련의 침공으로 아프간 전쟁이 발발하자, 사우디는 무자헤딘 세력들한테 미국과 매칭펀드 조약까지 맺고 수백억달러를 지원했다. 사우디 정부와 종교계는 이슬람주의 전사들에게 돈과 할인 비행기표도 제공하며 아프간 참전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빈라덴도 아랍의 이슬람주의 세력들을 아프간 전쟁에 참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자신도 급진적인 지하드주의자로 변신했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군할 때 알카에다가 결성됐다.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이슬람주의 세력들은 본국으로 돌아와 이슬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무장투쟁의 주역이 됐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이슬람국가 지도자 (1971~)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이슬람국가 지도자 (1971~)
바그다디 나 칼리프야! 나도 한마디해. 나는 이라크 출신이라서, 후세인이 개판친 거 잘 알아. 하지만 후세인이 개판친 거 따지고 보면, 미국이 꼬드긴 거야. 지금 중동에서 종파분쟁이 본격화된 거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작인데, 이거 미국이 후세인을 부추긴 거잖아. 그 이후로 우리 이라크 사람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 결국 떨쳐일어나 지금 칼리프국가인 이슬람국가까지 선포하게 된 거야.

후세인 말 잘했어. 내가 그 생각만 하면 잠을 못 자요. 미국 너희들이 나를 부추겨 이란과 전쟁하게 해서, 내가 빚더미에 올랐어. 사실 내가 이란의 시아파 이슬람혁명을 막으려고 총대를 멘 거잖아.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들은 전쟁 뒤에 나한테 빚독촉만 했잖아. 내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쿠웨이트를 점령해 보상을 받으려 했겠어. 쿠웨이트 점령도 내가 그런 의사를 미국에 밝혔는데, 미국이 중동 국가 내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어. 그런데, 너희 아버지 부시가 다국적군을 조직해 이라크까지 쳐들어와 내 인생 종치게 했어. 따지고 보면 나만큼 아랍의 대의, 수니파 이슬람을 위해 일한 사람 없어. 이집트 등 모든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굴복해 평화협정 맺었지만, 나 혼자 끝까지 싸웠잖아. 그리고 이슬람주의 세력 막는 데 나보다 열심히 한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해! 나를 그렇게 부려먹다가 왕따시키고, 결국 부시 네가 나를 죽이기까지 했어.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혁명이 성공한 이란을 1980년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국경분쟁이 명목이었으나, 후세인은 이슬람혁명으로 약화된 이란을 대체해서 걸프 지역의 패권국가를 꿈꾸었다.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 혁명정부를 와해하려고 이라크를 지원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럼스펠드를 이라크 특사로 보내, 자신들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던 이라크와 국교정상화 등을 논의하고 무기도 판매했다. 사우디 역시 이라크에 전비를 대주며 지원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이란의 혁명정부를 강화시켰고, 사실상 이란의 승리로 1988년에 끝났다. 후세인 정권은 전비와 석유가 하락으로 재정이 악화됐다. 후세인 정권은 쿠웨이트와 유전분쟁을 벌여 100억달러에 가까운 보상금까지 합의했다가 1990년 8월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즉각 미군을 파견하는 한편 다국적군을 조직했다. 이라크의 침공에 노출된 사우디는 미군에 기지를 대주며 협력했다. 1991년 1월 미국은 다국적군을 주도하며 쿠웨이트를 탈환하고 이라크 영내까지 진군했으나,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지는 않았다.

빈라덴은 토라보라 전투에서 어떻게 탈출했나

빈라덴 사실 나는 걸프전 전까지 사우디 왕가와 미국과 사이가 좋았어. 아프간 전쟁에서 영웅으로 돌아온 나는 당신 후세인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사우디 정부에 경고했으나, 듣지 않았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한 뒤 나는 사우디 왕가에 아프간 전쟁에 참가한 무자헤딘 등을 동원해 싸워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더라고. 그러더니 미군을 무슬림들의 성지인 사우디 땅에 불러들여 주둔시켰어. 이교도와 불신자들의 군대를 성지에 주둔시켜 준다는 것이 말이 돼? 게다가 여군들까지 와서 주둔하다니. 미국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땅을 침략한 거야. 사우디 왕가 놈들은 여기에 항의하는 나를 추방시켜 버리더군. 걸프전은 우리의 반미성전의 출발점이야.

빈라덴은 걸프전 때 미군의 사우디 주둔에 항의하다가, 사우디 정부로부터 추방당해 수단으로 망명했다. 그는 수단에서 본격적으로 알카에다 조직을 확장했다. 빈라덴은 전세계의 각종 이슬람주의 테러조직과 연계하고, 각종 테러공격 등을 지원했다. 1996년 자와히리의 알지하드 등 이집트 지하디스트 조직들이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던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수단 정부는 국제적 압력에 못 이겨,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추방했다. 빈라덴은 아프간으로 가서 다시 근거지를 잡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미디어를 이용해 사우디 왕가를 비난하는 한편 반미 지하드를 선전했다. 탈레반은 자신들을 지원하던 사우디 왕가를 비난하던 빈라덴을 송환시키려 했으나, 1998년 동아프리카 동시테러 사건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알카에다는 케냐의 나이로비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주재 미국 대사관을 동시에 자살폭탄테러로 공격해 수백명을 사망시켰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빈라덴의 아프간 거처를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는 탈레반을 반미로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 빈라덴은 미국의 공격에서 살아남아서, 오히려 반미성전의 대표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부시 빈라덴, 당신은 9·11테러로 우리의 심장부를 공격했어. 수천명의 죄없는 민간인들이 죽었어. 당시 대통령이던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알카에다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완전히 뿌리뽑으려는 테러와의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잖아.

후세인 그럼,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을 뿌리뽑아야지, 왜 나를 공격한 거야? 내가 알카에다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이들을 누구보다도 잘 막았잖아. 나 진짜 억울하고, 궁금해. 테러와의 전쟁을 하다가, 갑자기 도대체 왜 이라크를 침공한 거야?

빈라덴 그러게. 나도 의아하더라고. 미군이 아프간을 침공해, 두달도 안 돼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어. 나는 탈레반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질지 몰랐어. 미군의 전력이 대단하데. 나와 알카에다는 파키스탄 접경 토라보라 산악지대로 토끼몰이 당해, 일망타진 일보직전이었잖아. 그런데 이상하더라고. 미군은 특공대 몇명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아프간 현지 군벌이었어. 아마 그때 미군 산악부대 등을 투입했다면 아마 나는 잡혔을 거야. 나는 유유히 토라보라를 빠져나가, 파키스탄 연방부족행정지역으로 잠적했지. 나야 물론 ‘생큐’였지만, 미국 애들이 어디가 모자라는거 아니야 하며 이상하게 생각했어. 사실 그때 죽는지 알고 유서까지 남겼어. 아들에게 내가 반미성전을 이만큼 했으니, 너는 이런 일에 관여 말고 편안히 살라고.

2001년 11월 빈라덴이 살아서 탈출한 토라보라 전투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의 변곡점이었다. 미군 쪽은 애초 아프간 전쟁이 중앙정보국 군사요원과 특수부대원 400명 정도와 반탈레반 현지군벌, 공습으로만 시작되어, 토라보라에 대규모 미군 병력을 투입할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한다. 당시 워싱턴 지도부와 아프간 전쟁을 지휘하던 중부군사령부는 이미 이라크 침공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과 중부군사령부는 아프간 전쟁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고, 토라보라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면 아프간 전쟁에 병력이 묶일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시리아 내전, 그게 바그다디의 기회였지

부시 나도 그때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그때는 내가 완전히 우쭐해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어. 사실 아프간보다는 이라크에 더 신경을 썼어. 네오콘(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 놈들이 이라크가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고 하도 짖어댔어.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부통령 딕 체니도 이라크를 때려야 한다고 더 극성을 부렸으니. 럼스펠드는 9·11테러가 난 당일부터 그 얘기를 하더라고. 차제에 중동의 핵심인 이라크를 점령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하는 친미정부를 세우면 골칫거리 중동에 민주화 도미노 효과가 난다는 ‘중도개조론’ 말이야. 그럴듯하잖아. 게다가 럼스펠드는 우리 아버지가 걸프전을 치렀던 병력의 절반만으로도 이라크를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고 뻥까지 쳤어. 병력을 경량화, 기동화하고 첨단무기를 결합하는 ‘군개조론’을 멋지게 보여주겠다나.

바그다디 여기서 부시에게 제일 고마워할 사람은 나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지. 미국 애들 이라크 침공해서 한달 만에 후세인 정권 타도하더니, 전쟁 이겨서 끝냈다고 생각하더라고. 부시 당신은 그때 전투기 타고 항모에 내려서 ‘임무 완수’라는 플래카드 걸고 전쟁 이겼다고 쇼했잖아. 그 쇼 할 때 바그다드 등에서는 우리가 서서히 기지개 켜고 있었고, 그때부터 전쟁 시작이었어. 특히 식민지 총독 행세하던 폴 브리머라는 임시행정청장이라는 녀석은 이라크 정부군 해체와 바트당 관료 해체로 기름을 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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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미·영 연합군은 이라크를 침공해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후세인 정부를 타도했다. 폴 브리머는 칙령 1, 2호를 통해서 이라크 정부군 해체와 후세인 정부 내에서 고위 관료들의 등용 금지를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침공 때 사실상 전투를 회피하고 무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이라크 정부군 병사와 장교, 수니파 관료들을 반미로 돌아서게 했다. 미군의 침공 직후부터 이라크 내로 잠입한 알카에다 세력들은 이들을 포섭해, 수니파 대 시아파의 내전으로 몰고갔다.

부시 우리가 실수하기는 했지. 근데 내가 2007년부터 병력을 증강하고, 수니파 온건부족 세력들의 협조로 알카에다 세력을 거의 소탕했는데, 너 바그다디는 어떻게 살아난 거야?

바그다디 나도 여기까지 순탄하게 온 게 아니야. 나도 미군 침공 직후 체포되어 감옥에 있다가 풀려났어. 부시 말대로 우리 이슬람국가의 전신인 이라크이슬람국가(ISI)는 내가 지도자로 취임할 때인 2010년 5월께엔 거의 와해 상태였어. 이라크이슬람국가의 전신인 이라크알카에다(AQI)의 지도자인 자르카위라는 요르단 출신 조직폭력배가 워낙 잔인하게 행동해 인심을 잃어서, 수니파 부족들이 들고일어났어. 병력이 증강된 미군도 좀 정신차리고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며 우리를 소탕해 거의 궤멸 직전이었지. 그런데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 신천지였지. 사우디 등 보수왕정들이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밉다고 수니파 반군들한테 무기와 돈을 막 지원하는데, 그게 어디로 갔겠어. 우리 알카에다 세력이 최대 수혜자였지. 게다가 2011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누리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시아파 중심의 종파적인 국정운영을 하면서 수니파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어. 나는 더욱 종파갈등을 부추기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장했지.

빈라덴 반미성전의 길은 내가 깔았고, 알카에다가 지도력을 갖고 있어. 너 요즘 내 후계자인 자와히리를 개무시하고, 알카에다와도 결별했다며?

바그다디 형님, 그건 달이 차면 기우는 이치입니다. 형님 죽고 나서, 파키스탄 골짜기에 처박혀 있던 알카에다 본부가 한 게 뭐예요? 자와히리 그 친구 원래부터 강퍅한 노선투쟁이나 하면서 신망도 없잖아요. 입으로만 나불대고.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나는 2010년 6월 내 대원들을 몇명 보내서 누스라전선이라는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를 결성했죠. 이 친구들 잘했었어요. 자기들이 알카에다라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주민들에게 강퍅한 이슬람통치도 강요하지 않고 잘 어울렸죠. 누스라전선은 다른 반군들과 반아사드 연합전선을 구축해 세력을 확장했죠. 2013년 여름이 되면서 누스라전선이 세력을 굳히자, 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이라크이슬람국가(ISI)를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로 확대개편하고, 누스라전선도 통합한다고 발표했죠. 누스라전선 쪽이 반발하고, 알카에다 본부의 자와히리도 인정 못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강행했어요. 내 본색도 드러냈죠. 나는 엄격한 이슬람통치를 강행했죠. 우리 쪽에 싸우러 오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누스라전선의 대중노선보다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나에게 끌리는 건 당연한 거였죠.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친 국제적 조직이 더 폼나잖아요.

빈라덴 그래도 너가 칼리프라고 즉위한 것은 좀 주제넘고 과대망상이라는 평가가 우리 쪽에서도 나와. 너 그러다가, 나랑 후세인처럼 될 수 있어.

“미 지상군 투입해서 나 잡아봐라~”

바그다디 형님이나 우리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모두가 꿈꾸는 게 뭐예요?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 이슬람통치가 실시되는 무슬림들의 공동체, 칼리프 국가의 복원 아니에요? 내가 그거 한 겁니다. 내가 과단성 있게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이거 못했어요. 내전으로 무주공산된 시리아와 이라크 접경지대에서 자리잡고, 종파분쟁을 부추겨 수니파 세력들을 모아서 밀어붙인 거죠. 내가 점령한 곳에서 집단처형하는 걸 잔인하다고 하는데, 그거 다 이유가 있어요. 충격과 공포 효과예요. 적들의 항전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계속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일단 점령이 굳어지면, 우리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법과 질서를 확보했어요. 전쟁과 무질서에 지친 주민들이 오히려 호응하더라고요. 탈레반도 그랬잖아요. 전쟁과 무질서보다는 가혹한 통치의 평화와 질서가 좋다고 아프간 주민들이 호응했잖아요.

부시 바그다디, 너 기고만장하는데,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이 가만둘 줄 알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너와 이슬람국가는 지도에서 사라질 거야.

바그다디 그럴까? 나와 이슬람국가를 확실히 잡으려면 지상군이 들어와야 해. 근데 그거 지금 누가 할 거야? 오바마는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한사코 선을 긋잖아. 당연하지, 미국이 그럴 힘과 의지도 없으니. 이라크에서 봤잖아. 최소한 60만 병력에다가 적어도 10년은 주둔해야 해. 미국이 그거 할 수 있어? 뭐 쿠르드족 반군이나 시리아 내전의 온건파 반군을 모아서 싸우겠다고 하는데, 웃기는 얘기야. 그 친구들이 우리 상대가 될 것 같아. 우리를 격퇴하겠다고 온갖 얘기들이 나오는데,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토론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미군이 제발 지상군 좀 파견했으면 좋겠어. 미 지상군이 오면 우리야 더 세력을 모을 수 있지.

기자 오랜 시간 고마워요. 원래 이 자리에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버락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도 참석하려고 했으나, 당신들과 말 섞으면 싸움 날 것 같다며 참석을 취소했습니다.

일동 헐.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이슬람 양대 종파

다수이자 주류 수니파…이란서만 주류인 시아파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 양대 종파로 나뉜다. 수니파가 다수 종파이고 시아파가 소수 종파이다. 수니·시아파 분열은 무함마드 사후 그 후계자인 칼리프의 자격을 놓고 일어났다. 4대까지는 정통 칼리프 시대로 이슬람의 종파 분열이 없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4대 칼리프 알리의 후계자를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렸다. 수니파는 무슬림 공동체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후손에게 칼리프의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양쪽은 이를 놓고 전쟁까지 벌여, 결국 수니파가 칼리프를 독점했고, 시아파는 비주류 소수종파로 밀려났다.

현재 이슬람 세계에서 대부분 국가들은 수니파가 다수이자 주류이다. 시아파는 주로 걸프 지역에 모여 있다. 시아파가 다수이자 주류인 나라는 이란이 유일하다. 시리아는 시아파 내의 소수종파인 알라위파가 권력을 잡고 주류적 위치에 있으나, 인구의 다수는 수니파이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수니파가 소수이나 사담 후세인 시절부터 권력을 잡고 주류적 위치에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인구의 다수인 시아파가 정부를 장악했고, 이에 수니파가 저항해 종파분쟁이 시작됐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이후 시리아와 레바논 내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를 구축해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시아파 연대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걸프 지역의 수니파 보수왕정을 중심으로 반시아파 연대를 구축했고, 이는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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