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드(왼쪽)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23일(현지시각) 숨졌다. 사우디 국영방송은 살만(맨 오른쪽) 왕세제가 왕위를 이어받는다고 전했다. 2010년 11월 압둘라 국왕이 미국 방문을 떠나기 전 리야드에서 살만 왕세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AP·사우디통신 연합뉴스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90) 국왕이 타계했다. 왕위는 이복동생인 살만(79) 왕세제가 이어받았다.
사우디 왕실은 23일 압둘라 국왕이 새벽 1시께 유명을 달리했다고 발표했다. 압둘라 국왕은 지난해 12월31일 폐렴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압둘라 국왕은 이복형인 파드 국왕의 뒤를 이어 2005년 여든살의 나이로 사우디의 여섯번째 국왕에 올랐는데, 병세가 짙었던 파드 국왕을 대신해 1995년부터 섭정을 해왔다. 그는 1924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의 13번째 아들로 태어나 1982년 왕세제이자 부총리가 됐다. 사우디는 초대 국왕의 뜻에 따라 아들 형제들 사이에 왕위를 잇는 ‘형제 승계’를 한다. ‘왕세자’가 아닌 ‘왕세제’가 왕위를 잇는다.
압둘라 국왕은 사우디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여느 국왕들과 견줘 ‘상대적으로’ 사우디 여성의 권익 증진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왕좌에 오른 첫해에 사우디 사상 첫 지방의회 선거를 직접투표로 치렀고, 2009년 두번째 선거부터는 여성의 참정권을 약속했다. 2013년 사우디 국회에 해당하는 슈라위원회의 위원 20%가량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사우디 국왕 가운데는 처음으로 빈민가를 방문한 뒤 1300억달러를 들여 빈민가에 50만가구의 집을 새로 짓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참정권은 “왕국의 사회적 관습 때문에” 두 차례 연기 끝에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세계적 논란을 불렀던 여성의 자동차 운전 금지를 풀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11년 ‘아랍의 봄’ 때 아랍을 휩쓸었던 민주화 시위가 사우디에서는 발이 묶였다. 압둘라 국왕은 사우디의 이슬람 최고성직자한테 ‘이슬람은 거리시위를 금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시위대를 투옥했다. 이웃 나라 바레인에 군대를 보내 시위 진압을 도왔다. 왕정에 대한 도전은 철저히 짓누른 것이다.
압둘라 국왕은 2006년 왕자 등 35명으로 구성된 ‘충성위원회’를 만들어 왕위 계승 문제를 결정하도록 했는데, 당시 처음으로 부왕세제도 임명하기로 했다. 압둘라 국왕이 숨지고 곧바로 살만 왕세제로의 왕위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사우디의 7대 국왕이 되는 살만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전임 국왕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접근법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사회 문제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살만이 압둘라 선왕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19살 때부터 50년 가까이 리야드 주지사를 역임한 그는 2012년 왕세제에 올라 최근 몇달 압둘라 국왕을 대신해 대외 업무를 맡아왔다. <알자지라>와 <가디언> 등은 살만 국왕이 파킨슨병 또는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79살이라는 나이도 국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 국왕은 이슬람국가(IS)의 위협, 유가 하락, 시아파 정부들과 불화 등 산적한 문제들을 떠안게 됐다. 새 왕세제 자리는 무끄린(68) 부왕세제가 잇게 된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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