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가 23일 시리아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을 폭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리아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신전의 내부와 주변 기둥들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찍힌 사진 속엔 두 기둥 사이로 온전했던 신전의 모습이 보인다. 팔미라/AFP 연합뉴스
평생 바친 고고학자 참수 소식 닷새만
시리아 당국 “바알샤민 신전 파괴”
“이슬람 이전 이교도 유물” 잇단 훼손
시리아 당국 “바알샤민 신전 파괴”
“이슬람 이전 이교도 유물” 잇단 훼손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리아 팔미라의 고대 신전을 폭파했다. 평생 이 고대 유적을 지켜온 여든 두 살의 역사학자를 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닷새 만이다.
마문 압둘카림 시리아 문화재청장은 23일 “이슬람국가가 바알샤민 신전에 다량의 폭발물을 설치하고 신전을 폭파해 크게 훼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아리인권관측소(SOHR)도 이날 성명을 내 ‘이슬람국가 대원들이 바알샤민 신전을 폭파시켰다’고 밝혔으나, 한 달 전 일이라고 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슬람국가가 설치한 폭발물이 터져 사원 내부가 파괴됐으며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들이 무너졌다.
기원후 17년에 지어진 바알샤민 신전은 고대 페니키아의 ‘폭풍의 신’이자 비를 내려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신 바알샤민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130년에 보수·확장했다. 팔미라 유적 가운데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던 건축물로 전해진다. 압둘카림은 “팔미라가 눈 앞에서 파괴되는 것을 보고 있다”며 “앞으로 다가올 날들엔 신께서 도와달라”고 한탄했다.
지난 5월20일 팔미라를 장악한 이슬람국가는 엿새 뒤 “범법자들이 기도했던 동상들”을 제외하고는 “역사적 도시를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북부의 고대 아시리아 도시 님루드와 파르티아 제국의 요새 하트라 유적지를 파괴한 것을 지켜보며 당장 팔미라가 훼손될 것으로 우려했던 고고학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팔미라에서 이들의 파괴 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에는 2000년간 사막을 지켜온 팔미라 박물관 앞 ‘알라트의 사자상’이 이슬람국가의 손에 파괴됐다. 높이 3m, 무게 15t에 달하는 이 사자상은 팔미라의 여신의 이름을 따 기원전 1세기께 만들어진 것이었다. ‘불경스러운 이단’이라며 인근 묘 두 곳도 폭파시켰다. 고대 동상 여러 개를 망치로 부수는 사진은 지난달 공개됐다. 이슬람국가는 이슬람 이전 유물은 이교도의 우상숭배 상징물로 치부해 파괴해왔다.
18일에는 평생을 팔미라 유적 연구에 바쳐온 고고학자 칼리드 아사드를 참수하고 주검을 훼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사드는 시리아 정부군이 팔미라에서 퇴각 전 빼돌린 유물 수백개가 보관된 장소를 묻는 이슬람국가의 심문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동쪽으로 290㎞ 떨어진 팔미라는 옛부터 오아시스가 잘 보존돼 ‘사막의 진주’라고 불렸다. 걸프만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팔미라는 해상 실크로드 무역의 중간 기착지로서 로마제국을 거치며 전성기를 누렸다. 팔미라 유적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 페르시아 양식이 혼합돼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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