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내 폭발 장치에 의한 추락”
테러 가능성 부인해온 러시아 곤혹
사실땐 ‘시리아 개입’ 보복당한 셈
러-IS 강력 보복 공격 악순환 우려
테러 가능성 부인해온 러시아 곤혹
사실땐 ‘시리아 개입’ 보복당한 셈
러-IS 강력 보복 공격 악순환 우려
이집트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의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는 이슬람국가(IS) 쪽의 폭탄테러 가능성이 높다고 영국과 미국이 인정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의 전쟁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형국이다.
■ 미·영, 테러 공격 인정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실은 4일 성명에서 “더 많은 정보가 검토되면서, 우리는 그 여객기가 폭발 장치에 의해 추락했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아직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자국 여객기의 시나이 반도 상공 운항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도 “우리는 그 추락이 여객기 내의 폭발 장치에 의해 야기됐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의 관리는 지난 31일 여객기 추락 전과 그 이후 수집된 정보보고를 종합해서 폭발물에 의한 추락 가능성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고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이 관리는 “시나이 반도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추가적인 활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 관리는 여객기가 이륙한 샤름엘셰이크 공항에서 누군가가 여객기에 폭탄을 반입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추가 정보가 있다고 했다. 이 관리는 “그 공항은 보안이 느슨하고, 이는 알려진 일이다”며 “공항의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시사하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당국이 이 사고가 폭탄 테러라고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는 자국 여객기들의 샤름엘셰이크 공항 이착륙을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모두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영국의 조처를 “아주 성급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사고 직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던 이슬람국가 쪽은 이날 소셜미디어로 유포한 음성 성명을 통해 “너희들이 여객기 잔해를 수거해 분석하고, 블랙박스를 가져다 분석해 우리에게 그 결론을 보고하라. 우리들이 여객기를 추락시키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조롱했다.
■ 러시아도 테러와의 전쟁 수렁? 러시아는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게 됐다. 이 사건이 이슬람국가의 소행이 확실하다면, 이는 그들의 주장대로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 때문이다. 이슬람국가 쪽은 공언한대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실행에 옮겼고, 이는 러시아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상호 보복 공격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으로 인한 깊은 내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소련 붕괴 뒤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도한 체첸의 독립을 저지하고자 두 차례 전쟁을 치르는 한편 이슬람주의 세력의 테러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러시아는 1991~94년 1차 체첸 전쟁, 1999~2000년 2차 체첸 전쟁으로 10만~15만명이 죽는 희생을 무릎쓰고 체첸 독립을 저지했다. 이 와중에서 대형 테러들이 잇따랐다. 1999년 9월 모스크바 등 3개 도시에서 폭탄테러로 307명이 숨졌다. 2002년 10월 체첸 게릴라들의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에서는 강경 진압으로 관객 등 170명이 숨졌다. 2004년 9월에도 체첸 게릴라들이 벌인 북오세티아 베슬란의 학교 인질 사건도 강경 진압해서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385명의 인질들이 숨졌다. 2010년 3월 모스크바 지하철 자살폭탄 테러로 40명, 2011년 1월에는 모스크바의 도모데도포 공항 폭탄테러로 37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아프간 전쟁 이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최고의 안보 위협으로 보고, 강경 대처로 일관했다. 이슬람주의 세력도 미국보다는 러시아에 더 큰 증오를 보였다.
여객기 사고를 이슬람국가 쪽이 저지른 것이 확실해지면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더욱 공격적으로 다룰 것이 확실하다. 러시아가 다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의 전쟁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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