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의 고급 호텔에서 알카에다 연계조직이 인질극 테러를 벌여 29명이 숨진 현장을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다. 와가두구/EPA 연합뉴스
아프리카 서부 빈국 부르키나파소
무장괴한 침입 잠자던 부부 끌고가
납치 사흘 넘도록 생사·행방 몰라
주민들 페북에 “부부 풀어달라” 호소
피랍 전날엔 호텔서 테러 29명 사망
무장괴한 침입 잠자던 부부 끌고가
납치 사흘 넘도록 생사·행방 몰라
주민들 페북에 “부부 풀어달라” 호소
피랍 전날엔 호텔서 테러 29명 사망
지난 16일 새벽 4시. 아프리카 서부의 빈국인 부르키나파소의 북쪽 국경지대인 바라불레는 아직 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작은 마을인 지보의 한 민가에 무장괴한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침대에서 잠자던 80대 백인 노부부를 거칠게 끌어내 차에 태운 뒤, 인접국 말리 쪽으로 사라졌다. 침실에는 갑자기 주인을 잃은 안경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40년이 넘도록 의술을 베풀어온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노의사 부부가 16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 추정되는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된 지 사흘이 넘도록 생사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가족과 현지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피랍자들은 지보에서 하나 뿐인 병원을 세우고 환자들을 돌봐온 켄 엘리엇(81)과 부인 조슬린이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17일 “호주 출신의 의사 부부가 전날 북쪽 국경마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고 확인했다. 말리의 무장그룹인 안사르딘은 이날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 부부가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사하라 에미리트’ 소속 지하디스트들에게 붙잡혀 있다”고 주장했다. 사하라 에미리트는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인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의 말리 내 조직으로 알려졌다. 알카에다 아프리카 조직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 경쟁적으로 테러를 벌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엘리엇 부부는 평생을 인도주의적 봉사와 사랑에 헌신해왔다. 닥터 켄은 15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부르키나파소에 일하러 갔다가 현지의 참담한 생존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켄은 영국 런던에 있는 의대에 진학해 위생학과 열대지역 의료를 공부한 뒤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장 외진 마을 중 한 곳인 지보로 돌아와 병원을 차렸다. 그는 한 자선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왔을 때 우린 아무것도 없었다. 초기에 가장 큰 도전은 일이 돌아가도록 유지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이었다”고 돌이킨 바 있다고 <시드니 모닝헤럴드>는 소개했다.
그렇게 43년 동안 부부는 가난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펴 왔다. 맨 처음엔 단 한개뿐이던 병상이 지금은 120개로 늘었고, 한달에 1건밖에 할 수 없었건 수술도 지금은 150건을 할 만큼 성장했다. 놀라운 것은, 외부의 재정 지원을 호소하지 않는다는 정책적 방침을 단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엘리엇 부부의 가족들은 16일 성명을 내어 “현지 소식으로 미루어 켄과 조슬린이 납치된 것 같은데 아직은 이유도, 그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며 “두 분은 1972년부터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지역 주민들에 헌신해왔으며 주민들의 큰 존경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 외무부 대변인은 17일 “(접경국인) 가나에 있는 호주 공관 쪽에서 상황 파악과 사태 해결을 위해 현지 당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 부부가 인술을 펼쳐온 지보의 주민들은 페이스북에 ‘지보는 의사 켄 엘리엇을 지지한다’(Djibo soutient Dr. Ken Elliot)는 페이지를 개설하고 석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두 부부가 개설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모습, 환하게 웃는 얼굴 등 수십 장의 사진과 그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앞서 엘리엇 부부가 납치되기 바로 전날 저녁,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선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가 외국인 투숙객이 많은 고급 호텔인 스플렌디드 호텔과 그 옆의 카페를 공격해 모두 29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에는 현지에서 난민 고아원을 운영하던 미국인 선교사, 프랑스와 스위스 국적자가 각각 2명 등 모두 18개국의 외국인이 포함됐다.
한편, 부르키나파소와 말리는 17일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최근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위협에 맞서 정보 교환, 합동 보안작전 등 공동대응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말리에선 최근 몇년새 알카에다 서아프리카 지부인 무라비툰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 부르키나파소는 이들이 북쪽 국경을 넘어 자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지난 16일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된 호주 출신의 의사 켄과 조슬린 엘리엇 부부가 20년 전 현지 주민의 어린 딸을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현지 주민들이 개설한 페이스북에 올라와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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