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역에서 지방 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케이프타운 외곽 매넨버그의 한 개표소에서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매넨버그/AP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에 이어,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집권 여당에 대한 성난 민심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3일(현지시각) 남아공 전역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개표가 85% 정도 진행된 가운데, 아프리카민족회의는 53.5%의 득표를 기록했다고 <에이피>(AP)등 외신들이 4일 보도했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27.5%, 경제자유전사(EFF)는 7.5%를 얻었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60% 이하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지난 1994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집권 이후 22년만의 일이다. 특히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와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 개표에서는 민주동맹이 아프리카민족회의보다 더 많은 득표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중심지인 포트엘리자베스에서도 민주동맹이 승리하는 등 아프리카민족회의는 주요 도시 3곳에서 지지기반을 크게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는 주마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성격이 짙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 출신의 주마 대통령은 지난 4월 국고를 사저 보수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탄핵 위기에 몰리는 등 부패 스캔들이 이어졌다. 또 현재 남아공의 실업률이 27%에 육박하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치는 등 경제적 어려움도 심각한 수준이다.
경기침체는 만델라 대통령 이후 인종에 기반한 투표가 치러졌던 남아공의 정치 지형을 바꿔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아공은 전체 인구 5400만명 중 흑인 인구가 80%에 이르고, 이들은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주요 지지자들이다. 여당 강세 지역인 프리토리아 외곽 마멜로디에 거주하는 알프레드 몰랄라(39)는 “우리는 만델라가 영웅이었다는 걸 알지만, 지금 상황에서 만델라를 얘기하는 건 쓸모없는 일”이라며 “정치적 어려움보다, 경제적 어려움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고 선거 분위기를 전했다.
경제 분석가인 세배스천 스피오가브라는 “중산층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분노하고 있고,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노동자층은 경제적 어려움에 실망감을 표출했다”고 선거 결과를 설명했다. 민주동맹의 흑인 지도자인 무시 마이마네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선거는 주마 대통령에 대한 선거인 동시에 남아공의 미래에 대한 국민투표였다”며 “우리는 이번 선거를 변화의 선거라고 이름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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