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8년 대통령 재직 당시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셰이크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과 만났을 때의 모습. AFP 연합뉴스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에 공헌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시몬 페레스(사진)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8일 숨졌다. 향년 93.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페레스 전 대통령이 뇌졸중 치료를 받던 텔아비브의 병원에서 숨졌다고 이날 보도했다. 페레스 전 대통령은 지난 13일 뇌졸중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페레스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들과 함께 일했던 원로 정치인으로, 20대 때부터 70여년간 장·차관과 총리와 대통령 등 정부의 주요 직책 대부분을 경험했다. 페레스는 1923년 당시 폴란드 영토였던 비시네바에서 태어나 1934년 아버지를 따라 영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폴란드에 남았던 그의 친척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로 학살당했다.
소년 시절 시오니즘(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 페레스는 20대 후반이던 1952년부터 국방부 관료 생활을 했으며 무기 구매 등을 담당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대 총리 데이비드 벤구리온은 페레스를 1959년 국방차관에 임명했다. 국방부 재직 시절 페레스는 이스라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하는 매파에 속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페레스가 중도 성향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93년 외무장관 재직 때 팔레스타인과 맺은 오슬로 평화협정이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내용으로 하는 이 협정으로, 페레스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함께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1995년 라빈 총리가 이스라엘 유대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고 강경 우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가 출범하면서, 평화협정의 성과는 상당 부분 증발해버렸다. 페레스는 최근에도 네타냐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한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해왔다고 <하레츠>는 전했다.
노동당 소속의 페레스는 세번 총리에 올랐지만 선거에서 단독 정부를 구성할 만큼 승리를 거둔 적은 없었다. 2007년 모셰 카차브 전 대통령이 성폭행 혐의로 물러난 뒤 상징적 직책인 대통령으로 91살인 2014년까지 재직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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