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에티오피아 비쇼프투에서 오로모족이 팔을 엑스(X)자로 그으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팔을 엑스자로 긋는 행동은 오로모족이 반정부 시위 때 하는 상징적 행동이다. 비쇼프투/AFP 연합뉴스
이달초 경찰의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최소 55명이 사망한 에티오피아에서 정부가 6개월 동안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에티오피아 총리는 9일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기관과 법원, 사회기반시설, 의료와 교육시설이 파괴됐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티오이피아에서 비상사태 선포는 25년만에 처음이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영장 없이 구금과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비상사태 포고령을 어기는 사람은 징역 5년형에 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수도 아디스아바바 남동쪽에 있는 비쇼프투에서 에티오피아 최대 부족인 오로모족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때 경찰이 강경 진압을 펼치자 시위대가 달아나다가 최소 55명이 압사했다. 야당인 오로모연방의회는 100명 넘게 숨졌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11월 이후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숨진 이들이 500명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8월 리우올림픽에서 오로모족 에티오피아 선수 페이사 릴레사도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뒤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엑스(X)자를 긋는 행위로 정부를 비판했다.
오로모족 반정부 시위는 정부가 외국 자본에 토지를 매각하는 일이 계기였다. 에티오피아는 1983~85년 내전과 대기근으로 50만명이 숨지기도 했지만, 최근 몇년 동안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농업 생산량은 최근 10여년간 3배, 국내총생산(GDP)은 6년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에는 그늘이 있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외국 자본에 국내 알짜배기 토지를 싼 값에 팔아왔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기업이 소유한 에티오피아 남서부 감벨라 지역 1만㏊(100㎢) 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이 대표적인 예인데, 서울시 면적 6분의 1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쌀은 전량 수출되고 에티오피아 국내에서는 유통되지 않는다. 외국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토지를 지역민들에게 헐값에 수용한 뒤, 쫓겨난 지역민들을 정부가 특정 장소에 한꺼번에 몰아넣는 정책이 가장 큰 반발을 불렀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토지 수용 문제로 촉발된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분노는 민주화 요구로 번지고 있다. 여당인 에티오피아국민혁명민주전선은 겉으로는 여러 부족이 참여하는 형태지만 주도권은 북부 티그레족 반군 단체였던 티그레국민해방전선(TPLF)이 쥐고 있다. 에티오피아 인구 중 오로모족은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티그레족은 6%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 2015년 총선 이후 에티오피아에서는 야당 의원이 한명도 없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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