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반부패 개혁 작업을 주도하며 왕족·기업인·정치인 등 고위층 수백여명을 수도 리야드의 리츠 칼튼 호텔에 구금한 채 조사를 지시한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의 모습. 사진 출처: AP 통신
모하메드 빈살만(32) 왕세자가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부패 청산’ 작업이 ‘부정 축재 재산 국고 환수’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빈살만의 한때 경쟁자였던 무타이브 빈압둘라(65) 왕자가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내기로 하고 풀려난 데 이어, 왕족과 기업인 및 주요 정치인 대다수가 합의금 지불에 서명하고 사면될 전망이다.
셰이크 사우드 알무집 사우디 검찰총장은 5일 성명을 통해, 지난달 4일 설립된 반부패위원회가 부패 혐의와 관련해 계좌를 동결한 왕족·기업인·정치인 등은 376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소환 조사를 받은 사람은 320명이며, 여전히 구금 상태인 사람은 159명이라고 덧붙였다.
반부패위원회는 설립 직후 수도 리야드의 5성급 리츠 칼튼 호텔 전체를 비운 뒤 최고위층 인사들을 불러들여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유죄를 인정하고 부정 축재 재산을 나라에 돌려주기로 합의한 사람은 반부패위가 사법당국에 사면을 권고할 예정이다. 무죄를 주장하는 구금자에 대해서는 반부패위가 사법당국에 관련 증거를 넘겨 기소하도록 할 예정이며, 이후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다투게 된다고 사우디 <알아라비야> 방송이 전했다.
반부패위는 빈살만 왕세자의 지시 아래 지난 2년간 고위층의 부패 혐의 증거를 수집해왔다. 공식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많게는 1인당 수십년치 증거가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당국 관계자는 최근 <비비시>(BBC) 방송에 “(현재까지는) 사전조사”라며 “(구금된) 사람들에게 (증거를 보여주며) 돈을 반납할지 묻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구금 및 석방된 인사들의 실명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난주 무타이브 빈압둘라 왕자가 10억달러(약 1조917억원) 이상을 내기로 합의하고 풀려났다. 빈압둘라 왕자는 한때 빈살만 왕세자의 강력한 왕위 계승 경쟁자이자 국가수비대 장관이었다.
빈살만 왕세자가 반부패위를 이끌며 개혁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왕세자의 권력 찬탈과 반대파 숙청으로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26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영어로 “터무니없다”며 이런 분석을 일축한 바 있다. 리츠 칼튼에 구금된 많은 인사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왕세자와 그의 개혁 조처에 충성하겠다고 맹세했고, 왕족 대다수는 “이미 내 아래다”라는 반박이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부패로 인해 고통받았고, 전문가들은 매년 사우디 정부 지출의 대략 10%가 부패로 새어나간다고 추산한다”고 말했다. 검찰 추산을 근거로 구금된 인사들한테 약 1천억달러(약 108조원)를 환수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사우디 시민들도 ‘오일 머니’가 일반에 재분배되리라 기대하며 빈살만 왕자의 부패 청산을 반기고 있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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