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2 17:42
수정 : 2018.10.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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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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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쇼기 살해 책임자로 빈살만 왕세자 정면 겨냥
미국 조야 등에서 빈살만 왕세자 교체 요구
트럼프, “빈살만이 책임 없기를 바란다”
터키 대통령, “적나라한 진실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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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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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쇼기 살해 사건의 파장이 실력자인 무함마드 빈살만(33) 왕세자의 정통성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조야 등 국제사회에서는 그의 왕위 계승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터져나와, 권력 암투가 치열한 사우디 왕가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델 알주베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21일 <폭스 뉴스>와의 회견에서 카쇼기 살해 사건은 “엄청난 실수”였다면서도 빈살만 왕세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정보 당국의 고위 지도부조차 이를 몰랐다”며, 왕세자가 “불한당의 공작”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적극 해명했다. 또 “이를 저지른 개인들은 그들의 권한 밖에서 일을 벌였다”며 “명백히 엄청난 실수가 있었고, 실수를 악화시킨 것은 은폐 시도였다”고 말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빈살만 왕세자는 이날 카쇼기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의를 표했다고 사우디 관영 통신 <에스피에이>(SPA)가 보도했다. 매우 이례적인 조처로, 사우디의 절대적 국왕 권력이 그만큼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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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결혼 서류를 접수하러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을 찾았다가 살해당한 자말 카쇼기(원 안)의 영사관 진입 장면을 담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사진. 터키 방송이 21일 공개한 것이다. 이스탄불/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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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 왕세자를 통해 사우디와의 적극적 동맹 정책을 추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확실히 기만과 거짓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빈살만 왕세자가 책임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왕세자 지위를 겨냥한 목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폭스 뉴스>와의 회견에서 사우디를 “급진적 이슬람과 폭력적 지하드의 최대 후원국”이라고 불렀다. 빈살만 왕세자에 대해서는 “우리는 그와 관계를 지속할 수 없고, 솔직히 그가 교체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왕세자가 연루됐고, 그 사건을 지휘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도 빈살만 왕세자가 배후라고 믿는다며 “처벌과 대가가 있어야만 한다”고 <시엔엔>(CNN)에 말했다. 역시 공화당 소속인 톰 틸리스 상원의원도 독립적 수사 결과에 따라 왕세자 교체 가능성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의 이런 태도는 카쇼기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를 하는 등 미국에서 활동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인사가 그가 비판해온 권력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묵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우디 왕실을 무조건 두둔하는 듯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것도 여론을 의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아버지인 살만 국왕에 의해 전격적으로 왕위 계승 1순위에 오른 빈살만 왕세자는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왕가 인사들을 숙청하는 한편 현대화를 추진해 반향을 일으켰다. 빈살만은 왕국 창건자인 이븐 사우드 이후 그의 아들 6명이 승계해온 왕위의 형제 계승 관습을 깨고 왕세자에 오른 3세다. 이 때문에 그의 책봉을 놓고 권력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 바 있다. 이번 사건으로 개혁적 지도자가 아닌 잔혹한 폭군의 이미지를 얻은 빈살만이나 사우디 왕가의 권력 향배가 주목되는 이유다.
사건 발생지인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23일 의회에서 사건의 “적나라한” 진실을 밝히겠다며 사우디를 압박했다. 앞서 사우디 정부는 이스탄불 영사관에 찾아온 카쇼기와 사우디 기관원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발표해 빈축을 샀다. 터키 경찰은 카쇼기의 주검이 이스탄불의 벨그라드 숲 근처에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에 나섰다. 사우디의 한 관리는 카쇼기의 주검이 양탄자에 말려 현지의 협력자에게 처리되도록 넘겨졌다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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