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1 16:14
수정 : 2018.11.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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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정부군 쪽 병사들이 지난달 6일 남서부 도시 타이즈에서 순찰 트럭 뒤에서 거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타이즈/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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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카슈크지 살해 이후 돌연 종전과 평화협상 주문
매티스 국방장관 “지금은 전쟁을 끝내야 할 때다”
예맨 내전으로 1만여명 숨지고 800만명 아사 위기
BBC, “사우디 왕세자 ‘사면’ 대가 정전 받아들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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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정부군 쪽 병사들이 지난달 6일 남서부 도시 타이즈에서 순찰 트럭 뒤에서 거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타이즈/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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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게 살해된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오랜 내전에 시름해온 예멘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까?
미국의 최대 ‘적대국’인 이란을 포위하기 위해 사우디의 잔혹한 예멘 내전 개입을 용인해온 미국이 돌연 ‘정전과 평화를 위한’ 협상을 주문하고 나섰다. 미국의 주문대로 내전이 종식된다면, 이 사건은 역사의 지독한 아이러니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를 처음 알린 것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 30일 워싱턴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진행한 대담에서 2012년 초부터 이어지는 내전으로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한 예멘에 대해 “그들은 다른 이들이 감당하는 것보다 큰 어려움을 안고 있다. 우린 후티 반군과 (이들을 공격하는 사우디 주도의) 아랍연합 등 모든 당사자들이 11월 스웨덴에 모여 해결책을 찾길 호소한다. 지금은 전쟁을 끝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협상에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쪽에서) 그들의 집, 도시, 공항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걱정하지 않도록 국경 지대를 비무장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휴전을 통해 “예멘 정부는 후티 반군과 남부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의 자치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정부의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대해 외신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영국 <비비시>(BBC)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피비린내 나는 예멘 갈등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사우디 연합이 우세를 점하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개입을 시도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상황 반전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달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해 사건이다. 사우디 왕가를 비판해온 저명 언론인 카슈끄지가 ‘계획적으로 살해’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미국 의회 내에선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와 예멘 내전과 관련한 미국의 군사 지원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2015년 3월 사우디가 이끄는 아랍연합이 내전에 본격 개입을 시작한 뒤 예멘에선 끔찍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의 개입 이후 사망자는 1만여명을 넘어섰고, 예멘의 홍해 쪽 주요 항구인 호데이다가 봉쇄된 탓에 인구 2700만여명 가운데 840만명이 아사 위기에 놓였다. 미국은 내전이 시아파 무장조직 후티를 지원하는 이란과 사우디가 중동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대리 전쟁’이라는 이유로 이런 문제를 외면해왔다.
매티스 장관의 발언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성명을 내어 마틴 그리피스 유엔 특사가 평화적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11월 중에 제3국에서 신뢰 형성을 위한 실질적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매티스 장관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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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이 임명한 마틴 그리피스 특사가 지난달 4일 아부다비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아부다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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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의 정전 요청에 대해 “사우디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예멘 내전의 인도적 피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미국 의회를 배려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짚었다. <비비시>는 일부 외교관들이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봐주는 대가로 사우디가 예멘에서 양보하는 안을 얘기해왔다며, 사우디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
휴전의 또다른 당사자인 후티 반군은 ‘회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정전 제안을 반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티 반군 정치평의회의 술탄 사마에이는 <에이피>(AP) 통신에 “전쟁은 멈춰야 하지만, 우린 우리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평화만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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