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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3 17:23 수정 : 2018.12.23 21:15

성탄절을 앞둔 22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내부에 예수가 탄생한 장소로 전해지는 장소에서 순례자와 방문객들이 참배하고 있다. 베들레헴/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관광 싹쓸이…숙박은 예루살렘
현지인 가이드 “4년 공부해 딴 자격증 무용지물”
이-팔 ‘또다른 전쟁터’…팔 실효지배 면적 18%뿐
“분리장벽 세우고 아랍계 접촉 차단해 실상 은폐”

성탄절을 앞둔 22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내부에 예수가 탄생한 장소로 전해지는 장소에서 순례자와 방문객들이 참배하고 있다. 베들레헴/AFP 연합뉴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세계 전역에서 몰려든 순례자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건물들 사이로 수많은 꼬마전구들이 매달리고, 예수탄생교회가 있는 구유광장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뚝하다. 그 옆엔 아기 예수 탄생을 실물 크기로 재연한 모형이 꾸며져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탄절을 2주 앞둔 지난 11일, <로이터> 통신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용해 “올해 베들레헴이 가장 분주한 성탄 시즌을 맞고 있으며 호텔 예약이 거의 다 찼다”고 보도했다. 베들레헴 관광 수요가 2015년 최저점을 기록한 이후 올가을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관광부는 올해 베들레헴 관광객이 4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모처럼 관광 수입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한꺼풀만 더 벗겨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이 베들레헴의 관광 산업을 독점하고 있으며,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을 자연스럽게 정당화하는 데에도 상당한 몫을 하고 있다고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최근 보도했다. 외지 방문자들의 대다수는 이스라엘 관광업체들의 여행 상품을 구매한 단체관광객들이다.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들은 광장 한 귀퉁이에서 커피를 홀짝이거나, 예수탄생성당 주변을 배회하며 현지 가이드가 필요할 지도 모르는 개인 관광객을 물색한다.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인 마테오스 알카시스는 <알자지라>에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베들레헴 여행 가이드를 허가하느냐? 그들에겐 이스라엘 관광 가이드를 하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카시스는 4년이나 베들레헴의 역사와 유적지를 공부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구술과 필기 시험을 통과해 관광가이드 자격을 땄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 없이는 자격증은 무용지물이다. 이스라엘 관광업체들은 자국의 관광 가이드 자격증 소지자만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다. 현재 알카시스와 같은 처지의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 250여명이 12년째 이스라엘의 영업 허가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고 한다.

성탄절을 앞둔 22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앞 구유 광장을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베들레헴/UPI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국가 수립을 선포한 이래 수차례의 전쟁과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영토를 빼앗아왔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대부분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데, 1995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이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배타적인 행정권을 인정한 ‘에이(A) 구역’의 면적은 전체의 18%에 불과한 실정이다. 베들레헴은 엄연히 팔레스타인의 영토이지만, 이곳의 관광산업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둘러싼 서사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양쪽 간에 또다른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게 <알자지라> 방송의 평가다.

또다른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 히스만 케마예스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이 각각 자기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외지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만 듣고 팔레스타인의 역사에 대해선 잊어버리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알자지라>는 팔레스타인 쪽의 주장에 대한 이스라엘 관광부의 코멘트를 들으려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트인 상인들 대다수는 먹고 살기 위해 이스라엘 관광업체들과 ‘수수료 거래’를 해야 한다. 예수탄생교회가 있는 번화가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이사 알마샤시는 “가게엔 무슬림 기념품, 기독교인 기념품, 유대인 기념품들을 모두 갖춰 놓았고 그들은 평화롭게 잘 지낸다”면서,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의 95%는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관광업체들이 데려온다”고 털어놨다.

2015년 성탄절에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앞 구유 광장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익명을 요구한 팔레스타인 관광부의 마케팅 담당 관리는 <알자지라>에 이스라엘 관광업체들이 싹쓸이를 하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정부가 자국 상인들과 이스라엘 업체간의 수수료 거래 관행을 통제할 실질적 수단이 없는데다, 관광객들이 무엇을 보고 어디에 머물 수 있도록 할 지에 대한 권한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관광 일정이 예수탄생교회와 기념품 가게 방문 중심으로 빽빽하게 짜이고 자유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아, 외지 관광객들이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하거나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방문할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 게다가 이스라엘 관광업체들과 함께 온 베들레헴 관광객 대다수는 이곳에서 불과 10여㎞ 거리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숙박한다. 이들의 씀씀이가 아랍 주민들의 수입으로 돌아가는 몫이 더욱 줄어드는 셈이다.

꼭 1년 전인 2017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광 착취와 국제 공모-점령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의 관광>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연간 하루 평균 3500여명의 관광객이 예수탄생교회를 방문하며 베들레헴의 호텔 객실 수가 3900여개나 되지만,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제외한 연중 평균 숙박객은 전체수용 능력의 절반 수준인 2000명에도 못미친다.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 힐루는 “그나마 호텔 숙박객들도 이스라엘 관광업체들의 권고로 호텔 안에서만 지낼 뿐 바깥을 돌아다니진 않아서 팔레스타인의 실상이 어떤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그게 이스라엘의 관광산업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팔레스타인 관광 가이드 카마예스도 “이스라엘이 분리장벽을 세우고 아랍인 마을 입구에 붉은색 경고 표지판을 세워 관광객들의 방문을 차단하는 이유는 양쪽이 서로를 이해하는 걸 막으려는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선전전)에 의해서만 보여진다”고 한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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