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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1 18:58 수정 : 2020.01.02 02:30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자국 주재 미국대사관을 습격한 12월31일 저녁, 미군 해병대 소속 수직이착륙 MV-22 오스프리 수송기들이 대사관 구내에 기동타격대 병사들을 내려놓고 있다. 바그다드/미국 국방부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 봉쇄로 친미질서 중동 기대
이라크전 감행 막대한 전비 썼지만
반미·이란 영향력 확대로 이어져
사이공·테헤란대사관 악몽 재연 우려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자국 주재 미국대사관을 습격한 12월31일 저녁, 미군 해병대 소속 수직이착륙 MV-22 오스프리 수송기들이 대사관 구내에 기동타격대 병사들을 내려놓고 있다. 바그다드/미국 국방부 제공, 로이터 연합뉴스

1975년 미국 외교관들이 앞다퉈 헬기로 탈출하던 베트남 사이공의 대사관, 1979년 이란의 대학생들이 밀고 들어오던 테헤란의 대사관, 1979년 성난 군중들이 방화를 하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대사관, 2012년 무장시위대에 공격당해 영사가 숨진 리비아 벵가지의 영사관…. 미국 재외공관들의 피습과 수난은 미국 대외정책의 실패와 변곡점을 상징했다.

2019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 이라크의 미국대사관에 수천명의 성난 시위대가 난입을 시도한 장면은 미국엔 악몽이다. 2조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퍼부으며 전쟁을 치른 이라크에서 그 결과가 반미뿐만 아니라 적성국 이란의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 증대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 피습 사건은 최근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 증대로 촉발된 사건이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뒤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1980년 연두교서를 통해 페르시아만에서 미국의 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란 봉쇄가 핵심인 카터 독트린은 그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의 뼈대가 됐다.

1980년 9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란을 침공하며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 봉쇄의 본격적 시작이자, 이라크가 이란 봉쇄의 노예가 되는 출발이었다. 후세인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패권뿐 아니라 자국 내 시아파 주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봉쇄를 위해 이란을 침공했다. 배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슬람혁명 전파를 우려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이란 수니파 보수왕정 국가들이 있었다.

미국은 도널드 럼즈펠드를 이라크에 특사로 파견한 1982년 전후로 2억달러의 군수지원을 했다. 럼즈펠드는 30년 뒤인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주역이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2월까지 진행된 2차 대전 이후 최장기 정규전이었으나 이란 혁명만 공고히 하고 사실상 이라크의 패전으로 끝났다. 반혁명 전쟁의 총대를 멨던 후세인 정권은 빚더미에 올라 사우디와 쿠웨이트로부터 빚 독촉을 받자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이는 1991년 2월 미국이 쿠웨이트를 탈환하기 위한 걸프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이란과 이라크를 동시에 봉쇄하는 이중 봉쇄정책으로 강화됐다.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타도해 중동 질서를 바꾸려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다.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면, 이란 등 중동 전역에 친미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전파될 것으로 꿈꿨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라크에서 부활했다.

무엇보다도 이라크에서 다수 주민인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역설이 벌어졌다.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의 발호도 이라크 등 중동 전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켰다. 특히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는 이라크 내의 시아파 민병대 등이 동원돼 활약했다. 이번 이라크 주재 미대사관 피습 사건을 촉발한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키르쿠크기지에 로켓포 30여발이 떨어져 사상자가 발생하자, 공격 배후를 카타이브 헤즈볼라로 지목하고 29일 이 조직의 기지를 폭격해 25명을 숨지게 했다. 미국이 의외의 공습을 감행한 것은 이란과 이라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터져 나오자, 이란을 옥죌 수 있는 기회로 판단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하지만 결과는 이라크 내에서 ‘반이란’이 아니라 ‘반미’로 터져 나오는 예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 봉쇄를 앞세운 미국의 중동정책, 특히 이라크 전쟁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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