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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네타냐후’ 연정 두 주역 라피드와 베네트는 누구?

등록 2021-06-03 09:44수정 2021-06-03 10:45

중도 라피드와 극우 베네트 인생도 대조적
라피드 ‘세속주의’ ‘언론인’ ‘대중적 인기’
베네트 ‘종교적’ ‘군인과 기업인’ ‘강경 민족주의’
나프탈리 베네트 야미나 대표. 로이터 연합뉴스
나프탈리 베네트 야미나 대표.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를 15년 권좌에서 끌어내린 주역들인 야이르 라피드(57)와 나프탈리 베네트(49)는 정치성향만큼이나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다.

중도와 극우를 상징하는 라피드와 베네트의 동거는 이스라엘의 균열과 우경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베냐민 네타냐후를 둘러싼 정치적 대결과 분열뿐만 아니라 극우를 포함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경화를 드러낸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번 연정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베네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극우 총리로 등극하게 됐다. 그의 정치성향이 강경 우익으로 분류되는 베냐민 네타냐후보다도 더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깬 주요 원인인 요르단강 서안 내의 이스라엘 정착촌 운동의 지도자이다. 그는 동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요르단 서안까지도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부정한다. 이-팔 협상의 목표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주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오가며, 군과 기업 등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성공을 거뒀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적인 종교적 민족주의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정예 사예레트 막칼 특공대에서 복무한 뒤 히브리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1999년에 온라인 뱅킹 사기를 막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를 공동창업해서는 이를 2015년에 미국에서 1억4500만달러에 매각하는 사업적 성공을 거뒀다.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전쟁은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국제적인 비난만을 받았다. 그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년이나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돌연 사임하며, 네타냐후와 사이가 벌어졌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네타냐후의 측근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부인 사라가 그 원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베네트는 지난 2009년 네타냐후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 내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늦추는 결정을 하자, 이에 격렬히 반발하며 결정적으로 충돌했다. 당시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 참여를 유도하려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 베네트는 요르단강 서안의 정착촌 위원회 지도자를 지냈다.

그는 2013년 총선에 출마해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착촌 운동원 및 세속적인 유대 민족주의들로 ‘야미나’를 결성해서는 정부 내에서 교육 및 국방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네타냐후 진영에 계속 참여하다가, 지난 3월23일 총선 뒤에는 네타냐후의 연정 제안을 거부했다.

2년 동안 4번이나 총선을 치르고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것은 결국 네타냐후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1일 반네타냐후 연정 참가를 밝히면서 “다른 대안은 나라에 더 많은 선거를 강요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반네타냐후 연정의 첫 총리직에 오를 자신의 이념적 성향이 문제되자, 타협을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그는 “누구도 자신의 이념을 포기하라고 요구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꿈의 일부를 현실화하려는 것을 미뤄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놓고 논쟁하는 대신에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이르 라피드 예시 아티드 대표. AP 연합뉴스
야이르 라피드 예시 아티드 대표. AP 연합뉴스

야이르 라피드

텔레비전 앵커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인 라피드는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 2012년에 ‘예시 아티드’(미래가 있다)를 창당했다. 자신의 대중적 인기를 정치적 성공으로 바꾸려는 미디어 스타에 불과하다는 폄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화와 민족주의화가 강화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도적인 철저한 세속주의를 고수함으로써 최근 정치적 혼란에서 17석을 얻는 2당으로 부상했다.

그는 지난 3월 총선에서 1당인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정부 구성에 실패함에 따라, 이번에 정부 구성 임무를 맡고는 성사시켰다.

그의 아버지 요세프 라피드도 언론인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해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어머니는 소설가, 극작가이다.

라피드는 신문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뒤 텔레비전 앵커로 변신했다. 잘 생긴 용모에다, 복싱과 무술도 뛰어나서, 대중적 인기로 한때 이스라엘에서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창당한 예시 아티드는 1년만인 2013년 총선에서 19석이나 얻어서, 예상 밖의 대승을 거뒀다. 예시 아티드는 2019년에 베나 간츠 현 국방장관이 이끄는 중도 청백당의 연대에 참여했다. 이 연대는 그 이후 1년 동안 네타냐후의 우익 연대와 3차례나 선거를 치렀으나, 네타냐후를 축출하지 못했다. 결국, 베니 간츠가 지난해 3월 네타냐후와 거국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자, 라피드는 격렬히 반발하며 연대에 이탈했다.

그는 간츠가 지지자들에게 다짐한 근본적인 약속인 ‘네타냐후 축출 투쟁’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그는 지난 9월 <아에프페>(AFP) 통신과 회견에서 간츠는 네타냐후가 자신들의 연대에 협력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간츠에게 ‘네타냐후와 일해봤다. 왜 경험한 말을 듣지 않는가? 그는 71살이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백 연합을 떠난 뒤 야권의 대표로 자림매김됐다. 그는 네타냐후-간츠의 거국정부를 ‘웃기는 연정’이라고 조롱했다. 그의 조롱대로 연정은 네타냐후와 간츠의 불화로 지난 12월에 붕괴했다.

하지만, 라피드도 자신이 조롱한 연정보다도 더 큰 간극을 가진 정치세력들이 동거하는 연정을 구성하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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