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필리핀 레이테주 긴사우곤 마을을 휩쓴 산사태에 휩쓸려 부상을 입고 구사일생 살아난 알리샤 미라발레스가 병원에서 <에이피통신>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부상 부위를 살펴보고 있다. 긴사우곤/AP 연합
“진흙더미가 바위와 커다른 돌멩이와 함께 마치 ‘수프’가 흘러내리듯 산기슭에서 흘러내려 왔어요.”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인한 진흙 산사태로 최대 3천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리핀 중부 레이테섬의 긴사우곤 마을. <에이피(AP)통신>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산사태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을 재구성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플로렌시오 리바톤은 집으로 뛰어들어온 아내로부터 “산이 무너져내리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아들과 두딸 등 아이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250~300명의 학생들이 수업중이던 초등학교는 이미 진흙 더미에 매몰돼 이미 때를 놓쳤다고 아내는 말했다.
리바톤은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달렸으나, 이내 진흙 속에 파묻히고 말했다.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그는 밀려오는 진흙더미에 밀려, 아내의 손마저 놓쳤버렸다. 그는 “두 손으로 진흙 더미를 헤치면서 몇 시간을 겨우 버틴 뒤에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신히 “살려달라”고 외쳤다는 그는 “흙더미 위에 있던 이웃들이 맨손으로 진흙을 파헤친” 끝에 구조됐지만 심한 상처로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아내는 물론 진흙 속에 통째로 파묻힌 초등학교에 있던 아들과 두 딸의생사를 모두 확인할 길이 없다”고 비통해했다.
이레니아 베라스코(59)는 집에 있던 당구대 밑에 숨어 간신히 ‘가마솥 만큼 큰’ 바위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흙에 집 전체가 매몰되면서 당구대와 함께 그녀도 흙더미에 파묻혔다. 몇 시간 사투 끝에 구조된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5명의 손자·손녀들은 모두 실종됐다. 가족들을 모두 잃었다”고 울먹였다.
구조대는 20일까지 긴사우곤 마을에서 모두 74구의 주검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날 구조작업은 매몰된 초등학교 지역에 집중됐으나 아무런 생존자도 확인하지 못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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