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성 지원 넘어 농기자재·영농기술등 인프라 구축으로
시범농장 공동운영 새 모델…경기도-북 30만평으로 확대
시범농장 공동운영 새 모델…경기도-북 30만평으로 확대
상생의 남북 농업 협력
상. 쌀농사 시번포전에서 협동농장 현대화로 당국 개점휴업속 민간협력 ‘모내기전투중’
“산을 넘어오는 어스름에 곤충들이 자취를 지우고, 종일 일한 괭이 호미가 스르르 흙을 털고 넘어진다”(하종오 시인의 시 〈망종저녁〉 가운데)
6일은 망종이다. 보리 한 톨이 아쉬운 북한은 이모작을 많이 한다. 그럴수록 보리를 베고 볍씨를 심는 망종은 농번기의 절정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어야 한다. 이 시기를 넘기면 보릿대가 말라 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모내기도 늦어지니 벼농사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인도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이사장 법륜 스님)이 1일 보내온 〈오늘의 북한소식 23호〉는 “지금 북한엔 계엄령이 내려진 듯하다”고 전한다. 모두 협동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바람에 대낮엔 사람 그림자 찾아보기 어려워 쥐 죽은 듯 고요하다는 것이다.
망종을 전후해 지방자치단체 대북 농업협력 사업의 모범 사례인 경기도를 중심으로 ‘상생의 남북농업협력’을 점검한다.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북한 들녘은 전쟁터다. ‘모내기 전투 총동원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5월15일치 〈로동신문〉은 “전 당이 농사에 낯을 돌려 조직 사업과 사상 사업도 영농 전투장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북쪽 방송들은 5월 들어 평양 주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란, 몽골 대사관까지도 차례로 협동농장 영농지원에 나섰다고 전하고 있다.
남북농업협력도 ‘모내기 전투’중 남북농업협력 사업도 이른바 ‘모내기 전투’에 돌입했다. 대북민간지원단체인 한민족복지재단은 평남 숙천군 약전리 240만평을 농업협력사업 대상으로 정하고, 4월 중순부터 볍씨를 뿌렸다. 일찍 파종을 시작한 것은 모내기 없이 볍씨를 바로 땅에 심고, 볍씨와 함께 비료를 땅에 묻어 주는 ‘복토직파기술’의 농법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5월27일엔 남북통일농수산사업단(상임대표 허상만 전 농림부 장관)이 주최한 ‘제2회 삼일포 통일 모내기’ 행사가 금강산 지역 삼일포 협동농장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은 경남통일농업협력회(회장 전강석)가 5월15일부터 평양 강남군 장교리 일대 40만평을 대상으로 첫 모내기에 들어갔고, 이달 3~4일엔 그 바로 옆동네인 강남군 당곡리에서 경기도의 모내기 행사가 벌어졌다. 남북농업협력의 새로운 출발점 남북은 지난해 8월18~19일 개성에서 처음으로 차관급 농업협력위원회 1차 회의를 열어, ‘지속적인 농업협력의 실현’을 위한 7개항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정기국회 때 내놓은 남북농업에 관한 정책자료집에서 이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남북이 농업 분야에서 △정부 당국간(차관급) 협력 채널을 구축했으며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한 협력사업에 합의함으로써 농업협력의 새로운 방식 전환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북은 이 합의서에서 기존의 물자지원 방식을 벗어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전방위 ‘종합협력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확인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시범적 협동농장 운영을 통한 남북 공동영농단지를 개발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다만 남쪽이 공동영농단지 조성이라는 ‘지역 중심’ 접근 방식을 중시했다면, 북쪽은 종자생산·가공보관 시설 현대화, 비료·농약·농기계와 같은 농기자재 협력 등 ‘생산요소 협력’에 강조점을 두는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의 남북농업협력위원회는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1차 회의 뒤 10개월이 지났지만 다음 회의를 언제 열지 기약이 없다. 그 빈자리를 일찍부터 남북협력에 나선 강원도, 제주도와 그 뒤를 이은 경기도, 경상남도 등 지자체와 통일농수산사업단, 한민족복지재단 등 전문 지원단체들이 메우고 있다. 쌀 맛 나는 세상을 위하여
그동안의 농업협력 사업이 비료와 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일회성이었다면, 지난해 시작돼 올 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경기도 등의 남북 농업협력 사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쪽 일정한 지역의 협동농장을 시범농장으로 선정해 공동운영하기로 한다는 합의에 바탕해, 육묘 시설, 농기자재, 영농기술을 지원하고 남쪽의 기술자들이 방문하는 개발협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대북협력사업에 나선 후발주자 경기도의 농업협력은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난해 경기도와 북쪽 민족화해협의회의 합의로 평양시 용성구역 시범포전(3㏊, 9천평)에서 이뤄진 벼농사 시범사업은 그 첫 결실이었다. 남쪽의 품종과 농법, 영농기술 전문가 파견, 그리고 북쪽의 토지와 인력 제공, 생육 관리가 결합된 이 벼농사 시범사업에서 경기도는 300평당 494㎏을 생산했다.
이는 북쪽 평균수확량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쪽 농가 수준과 비슷하다. 또 공동 벼베기로 수확한 14.8t 가운데 1t을 남쪽으로 가져와, 이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협력 쌀 ‘경기-평양미’로 이름 붙여 먹거리를 함께 나누는 행사를 열었다. 남북의 농업협력이 ‘쌀 맛나는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걸 실감나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남북 농업협력에서의 이런 새로운 접근을 지난해 7월 북한이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남경제협력법을 채택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북은 이를 바탕으로 뒤이어 열린 남북경협위에서 남의 경공업과 북의 지하자원을 ‘유무상통’하는 신경협방식을 제안했다.
9천평 시범농장에서 30만평의 농촌현대화로
지난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경기도가 벌이는 농업협력사업은 매우 야심차다. 우선 벼농사 협력사업을 평양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강남군 당곡리 30만평(100㏊) 규모의 논으로 확대했다. 9천평의 시범포전에서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이 넘는 협동농장 단위로 확대한 것이다.
더 나아가 3개년 계획으로 농업용 지하수 개발, 비닐하우스 육묘장, 수확작물 관리를 위한 도정공장, 용배수로 정비 등 농업 기반 조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로·마을도로의 포장, 식수용 관정, 인민병원·탁아소·중학교 신축, 살림집·소학교·유치원 개보수 등 마을환경 개선사업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용성구역 시범포전 사업에 대한 북쪽 내부의 평가가 좋았다는 걸 보여준다.
경기도 정책기획관실 남북교류팀의 실무자인 이병우씨는 “협력사업은 북한 농촌의 현대화를 목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농업기반 조성 사업의 경우 경기도의 농업지원이 중단되더라도 북한 스스로 농업생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비닐하우스 육묘장 3600여평이 만들어졌고, 벼농사 협력사업은 경기도 농업기술원의 전문가 7~8명이 2주씩 교대로 현지에 상주하며 차질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1월 체결된 경기도와 북쪽 민화협과의 합의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30만평을 여러 곳에 분산하지 않고 한 지역에 집중해 성공적인 협력모델을 창출하고, 앞으로 지역발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한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상. 쌀농사 시번포전에서 협동농장 현대화로 당국 개점휴업속 민간협력 ‘모내기전투중’
지난해 경기도가 평양 용성구역 시범포전에서 재배한 벼를 수확하는 모습. 경기도 제공(위) 수확한 벼는 남으로 가져와 ‘경기-평양미’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아래)
남북농업협력도 ‘모내기 전투’중 남북농업협력 사업도 이른바 ‘모내기 전투’에 돌입했다. 대북민간지원단체인 한민족복지재단은 평남 숙천군 약전리 240만평을 농업협력사업 대상으로 정하고, 4월 중순부터 볍씨를 뿌렸다. 일찍 파종을 시작한 것은 모내기 없이 볍씨를 바로 땅에 심고, 볍씨와 함께 비료를 땅에 묻어 주는 ‘복토직파기술’의 농법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5월27일엔 남북통일농수산사업단(상임대표 허상만 전 농림부 장관)이 주최한 ‘제2회 삼일포 통일 모내기’ 행사가 금강산 지역 삼일포 협동농장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은 경남통일농업협력회(회장 전강석)가 5월15일부터 평양 강남군 장교리 일대 40만평을 대상으로 첫 모내기에 들어갔고, 이달 3~4일엔 그 바로 옆동네인 강남군 당곡리에서 경기도의 모내기 행사가 벌어졌다. 남북농업협력의 새로운 출발점 남북은 지난해 8월18~19일 개성에서 처음으로 차관급 농업협력위원회 1차 회의를 열어, ‘지속적인 농업협력의 실현’을 위한 7개항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유선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해 정기국회 때 내놓은 남북농업에 관한 정책자료집에서 이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남북이 농업 분야에서 △정부 당국간(차관급) 협력 채널을 구축했으며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한 협력사업에 합의함으로써 농업협력의 새로운 방식 전환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북은 이 합의서에서 기존의 물자지원 방식을 벗어나,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전방위 ‘종합협력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공동의 인식을 확인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시범적 협동농장 운영을 통한 남북 공동영농단지를 개발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다만 남쪽이 공동영농단지 조성이라는 ‘지역 중심’ 접근 방식을 중시했다면, 북쪽은 종자생산·가공보관 시설 현대화, 비료·농약·농기계와 같은 농기자재 협력 등 ‘생산요소 협력’에 강조점을 두는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의 남북농업협력위원회는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1차 회의 뒤 10개월이 지났지만 다음 회의를 언제 열지 기약이 없다. 그 빈자리를 일찍부터 남북협력에 나선 강원도, 제주도와 그 뒤를 이은 경기도, 경상남도 등 지자체와 통일농수산사업단, 한민족복지재단 등 전문 지원단체들이 메우고 있다. 쌀 맛 나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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