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무대로 이뤄지고 있는 남.북.미 3자 간 연쇄 양자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2.13 합의' 이행을 위한 관련국들의 움직임이 절정에 이르는 양상이다.
6자회담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3국 고위 인사들이 3월 첫 날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외교 행보는 큰 틀에서 6자회담의 `회기 간 회동'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그 목적은 `2.13합의'를 통해 살아난 6자회담의 동력을 이어가고 초기단계 행동들의 원활하고 신속한 이행은 물론 그 이후의 행동까지 모색하려는 데 있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남북 당국자 동선 주목 = 이번 남북 고위 당국자의 방미 일정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이하 현지시간) 각각 미국의 동서쪽인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김 부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내 학자 등과 어울려 세미나에 참석, 5∼6일 뉴욕에서 예정된 북.미 워킹그룹을 앞두고 `현지 적응'에 들어간 반면 송 장관은 2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하는 등 방미 일정을 소화했다.
송 장관은 또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 부시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당국자들을 만나며 숨가쁜 일정을 보냈다.
이들의 움직임에서 관심사는 3일 낮 뉴욕에서의 동선이다.
이미 김 부상이 2일 밤 뉴욕에 입성한 가운데 송 장관이 러시아 방문 직전에 뉴욕에서 반 나절 가량을 머무는 만큼 김 부상과의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을 엿보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로선 송 장관과 김부상이 만날 계획은 잡혀있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송 장관은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뉴욕 길거리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만난다면 2005년 11월 제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 이후 15개월 만이다.
9.19공동성명을 합작해 낸 카운터파트였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모습을 연출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특히 길거리에서 이뤄지는 `조우' 수준이 아니라 잠시라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될 경우 6자회담 경제.에너지협력 실무그룹 의장국인 우리로서는 북한의 요구사항과 2.13합의의 이행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접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2일 평양에서 끝난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계기로 남북간 6자회담 밖에서의 대화 채널이 복원된 긍정적인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기대를 더하고 있다.
◇ 한.미-북.미 접촉내용도 주목 = 2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는 6자회담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의제가 거론됐다.
북핵 불능화시 대북 경제지원 문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적성국교역법 해제 등 북.미 관계정상화의 일정과 전망,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의 논의 방향, 한반도 평화체제 등 `2.13합의'에 담긴 내용을 두루 협의한 것이다.
특히 두 사람은 현재 이행작업이 진행 중인 초기단계 조치 이후 북핵 불능화 시점에 이뤄질 일들에 대해서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단계 다음의 조치들이 의제로 올랐다는 점은 내용적으로는 이미 초기단계 조치가 무리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상징적으로는 6자회담 전개과정을 선도해가는 한.미 공조의 긴밀한 틀을 보여준 대목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6자회담 밖의 별도 포럼에서 다뤄질 평화체제 문제를 놓고 논의 시기와 방법 등을 놓고 공감대를 확보했는지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아울러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교역법 문제도 한.미 간에 논의했다는 점은 5∼6일 북.미 간 관계정상화 실무그룹을 앞두고 한.미 간 사전 의견교환이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시차를 두고 열리는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는 양측이 2.13합의의 바탕 위에 불신의 벽을 허물고 핵폐기 및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에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의 성격을 갖는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정대시 정책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 테러지원국 지정 문제와 한국전쟁 직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대북 적성국교역법 적용 문제 등 난제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1월 북.미 간 베를린 회동에 이어 2.13합의를 일궈낸 여세를 몰아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과 나아가 불능화 조치까지 행동에 나서고 그 진도에 맞춰 미국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이번 실무그룹이 진행되는 기간에 13개월간 6자회담의 속개를 가로막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의 해결을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에 통보하거나 발표할 공산이 크다는 점은 실무그룹의 결과를 밝게 해줄 수 있는 대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북.미 양측이 이제 막 신뢰 쌓기에 나선 단계인 만큼 작은 문제를 놓고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낙관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을 무대로 이뤄진 한.미 및 북.미 접촉은 물론 남북 회동까지 성사돼 완전한 연쇄 삼각 접촉이 이뤄질지, 북.미 양측이 첫 실무그룹 회의를 통해 관계정상화를 향한 첫 단추를 제대로 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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