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기자 등 27일 9명 사망”
“기관총까지 난사” 증언 나오기도
사찰 급습 실탄 쏘며 승려 수백명 연행
“기관총까지 난사” 증언 나오기도
사찰 급습 실탄 쏘며 승려 수백명 연행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진 27일 미얀마 군·경이 또다시 시위대에 발포해 적어도 9명이 추가로 숨지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계속되는 유혈 사태=미얀마 정부 대변인은 이날 양곤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군·경이 발포해 일본인 1명과 시위대 8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외무성은 숨진 일본인이 현장을 취재 중이던 비디오뉴스 <에이피에프>(APF) 기자 나가이 겐지(50)라고 확인하고, 미얀마 정부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진상조사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도쿄 주재 미얀마대사를 소환했다. 목격자들은 양곤 동부 도로에서 트럭을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시위대 3명을 사살한 뒤 주검을 길가 도랑에 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곤 시민 5만여명은 5명이 숨진 전날의 유혈 사태에도 아랑곳않고 10일째 시위를 이어갔다. 학생들과 승려들은 술레탑 길목을 차단한 무장병력 앞에서 손뼉을 치고 국가를 부르며, 소리 높여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국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외치며 항의했다. 파준다웅강 다리와 술레탑 부근에 운집한 시위대는 총격과 심한 구타를 당하면서 해산당했다. <시엔엔>(CNN)은 군이 기관총까지 사용했다는 목격담도 있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은 또 26일 밤과 27일 새벽 양곤 안팎의 사찰 6곳을 습격해 시위에 가담한 승려 수백명을 연행했다. 양곤 동쪽 마을에서는 사원 침탈에 항의하는 주민 1천여명이 군 트럭에 돌멩이를 던졌다. 군사정권의 승려들 단속은 이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전버마승려동맹’은 22일 성명에서 군사정권을 “사악한 군사독재 체제”이자 “모든 시민들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버마 땅에서 영원히 축출하자”고 촉구했다. 경제적 요구에서 시작한 시위가 정권 퇴진·축출 투쟁으로 발전하는 데 승려들이 주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시위를 승려들의 법의 색깔에 맞춰 ‘사프란 혁명’이라 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 움직임=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아웅산 수치(62)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24일부터 시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민족민주동맹은 시위의 선봉에 선 승려들과 연대해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기름값 인하 등 경제 문제 해결 △시위 전후로 체포된 정치범 석방 △군부와 정치인들 사이의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등 일단 평화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제민주연대 김경 상임활동가는 “시위대의 요구는 90년 선거 결과를 수용하라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와 같은 맥락에 있다”며 “그동안 탄압 속에서도 ‘88세대’등 민주화 세력이 끊임없이 발언하면서 연대해 온 게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 통신 등은 미얀마 군정이 24일 가택연금 중이던 수치를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해 시위의 구심점을 제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얀마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미얀마 군정이 1989년 계엄 당시 “공공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수치를 가택연금한 이후, 수치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동안 삼엄한 경비 아래 집 안에만 머물러 왔다. 22일 자신의 집으로 지지자 2천여명이 몰려들자, 수치가 집 앞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본영 이정애 기자 ebon@hani.co.kr
민주화 시위 11일째 맞은 미얀마
미얀마 군은 또 26일 밤과 27일 새벽 양곤 안팎의 사찰 6곳을 습격해 시위에 가담한 승려 수백명을 연행했다. 양곤 동쪽 마을에서는 사원 침탈에 항의하는 주민 1천여명이 군 트럭에 돌멩이를 던졌다. 군사정권의 승려들 단속은 이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전버마승려동맹’은 22일 성명에서 군사정권을 “사악한 군사독재 체제”이자 “모든 시민들의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버마 땅에서 영원히 축출하자”고 촉구했다. 경제적 요구에서 시작한 시위가 정권 퇴진·축출 투쟁으로 발전하는 데 승려들이 주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시위를 승려들의 법의 색깔에 맞춰 ‘사프란 혁명’이라 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 움직임=198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돼온 아웅산 수치(62)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24일부터 시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민족민주동맹은 시위의 선봉에 선 승려들과 연대해 반정부 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기름값 인하 등 경제 문제 해결 △시위 전후로 체포된 정치범 석방 △군부와 정치인들 사이의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등 일단 평화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제민주연대 김경 상임활동가는 “시위대의 요구는 90년 선거 결과를 수용하라는 민주화 세력의 요구와 같은 맥락에 있다”며 “그동안 탄압 속에서도 ‘88세대’등 민주화 세력이 끊임없이 발언하면서 연대해 온 게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 통신 등은 미얀마 군정이 24일 가택연금 중이던 수치를 인세인 교도소로 이감해 시위의 구심점을 제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얀마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미얀마 군정이 1989년 계엄 당시 “공공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수치를 가택연금한 이후, 수치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동안 삼엄한 경비 아래 집 안에만 머물러 왔다. 22일 자신의 집으로 지지자 2천여명이 몰려들자, 수치가 집 앞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본영 이정애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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