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단체 회원들과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군사정권의 유혈 시위 진압에 항의하는 뜻에서 미얀마 군사정권이 사용하는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은 군사정권이 사용한 현 국기를 거부하고, 별 다섯 개가 그려진 이전 국기를 사용한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국내 미얀마 이주노동자들 밤낮없는 두가지 삶
“한국민주화 역사 큰 응원…사장은 되레 꺼려”
“한국민주화 역사 큰 응원…사장은 되레 꺼려”
한국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화물 하역 작업을 하던 팔뚝에 붉은 띠가 묶여 있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한국의 지원과 동참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만들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손은 서울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굳은살이 박였다. 국내의 미얀마인들은 이주노동자이자 마얀마 민주화 운동가로 두 가지 삶을 힘겹게 살고 있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에서 일하는 아오민수(46)씨는 지금도 낮에는 경기 부천의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일한다. 한달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이 가운데 10만원을 버마민족민주동맹 회비로 낸다. 나머지 70만원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한다. 버마민족민주동맹의 회계를 맡고 있는 즈즈우(38)씨는 서울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일한다. 그는 “밤에는 청량리에서 물건을 팔고 낮에는 부천의 동맹 사무실에서 회계일을 하다 보니 하루에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두세 시간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다. 아오민수씨는 “사장이 허락하지 않아 민주화 요구 집회나 행사에 가지 못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버마민족민주동맹 조모아(35) 집행위원도 “직장 사람들과 버마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면 사장이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국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얀마에 있는 가족들도 항상 눈에 밟힌다. 부모와 동생이 미얀마에 있는 조모아씨는 “어렵게 가족과 전화가 연결돼도 시위 상황을 묻거나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 뚜뚜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겨 버린다”고 말했다. 이 단체 르윈(42) 부대표는 가족과 연락이 끊겨 부모의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는 “버마에서 시민들이 폭력에 신음하는 것을 바깥에서 바라봐야 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즈즈우씨도 “한국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경찰이 항상 가족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힘겹게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국인들의 지지와 응원은 큰 힘이다. 조모아씨는 부·마 민주항쟁부터 87년 6월 항쟁까지 얘기하며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버마에 돌아가면 젊은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즈즈우씨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얘기를 많이 나누다보니 가게 주인도 미얀마 대사관 항의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이런 한국인들의 지지가 버마의 민주화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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