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변호사들 시위에 앞장선 까닭은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키스탄 정국은 ‘군사정권 대 변호사들’의 정면대결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외신들은 정부의 검속과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2500~3500명의 상당수가 변호사일 것으로 추산한다.
비상사태 선포로 촉발된 헌법 회복과 정권 퇴진 요구 시위의 선봉은 변호사들이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일반인 참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변호사들은 무장한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전투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변호사들이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지만, 파키스탄에서 이들의 존재는 각별하다.
변호사들의 저항 전통은 영국 지배기로부터 찾을 수 있다.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식민지 변호사들은 독립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았다. 인도 독립의 3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모하메드 알리 진나가 모두 변호사였다. 이들 가운데 무슬림의 대표 격인 진나의 주도로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와 분리해 건국됐다.
그러나 세 차례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파키스탄 현대사는 법치주의와 한참 거리가 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 정부에서조차 97년 집권당 당원들이 대법원에 난입하고 대법원장이 쫓겨났다. 99년 쿠데타로 집권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사법독립을 주창해, 처음으로 법치주의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쿠데타의 적법성에 대한 심판을 앞둔 2000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몰아내고 다른 법관들한테는 ‘충성서약’을 받았다.
굴욕적인 상태가 이어지던 도중, 이프티카르 차우드리 대법원장이 올해 무샤라프의 장기독재 기도에 정면으로 맞서 사법부 독립 움직임을 주창해 법조인들의 저항에 불을 붙였다. “사상 처음으로 군사정부가 사법부를 제압하지 못한 사례”라는 <비비시>(BBC) 방송의 표현은 법조인들의 기대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 대선 투표 결과가 무효화될 것을 걱정한 무샤라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법부를 다시 하수인으로 전락시키자, 분노한 변호사들은 다시 들고일어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활동에도 간여하고 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는 “체포된 변호사들 가운데 우리 인민당 당원이 반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무샤라프 정권에 2년간 참여한 아타르 미날라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무샤라프가 사법부 독립을 거꾸로 돌리려 한 게 “대부분 평생 시위에 나선 적이 없는 전문직업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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