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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부토는 민주 지도자이면서 봉건 공주였다”

등록 2008-01-03 20:42

윌리엄 달림플
윌리엄 달림플
영 전문가, 부패·빈부격차 심화·이슬람세력 발흥에 책임 비판
“부토는 용감한 자유주의적 여성이었지만, 빈곤층을 외면한 친서방 성향의 봉건주의적 공주이기도 했다.”

영국의 저명한 남아시아 전문가 윌리엄 달림플이 지난주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에 내린 냉정한 평가다. 부토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그는 주간 <옵저버> 최신호에 기고한 글에서 “서구가 부토를 순교한 민주주의 지도자로서만 추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그가 펼친 엘리트적 정책이 빈부격차 심화와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상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달림플은 유력 대지주 가문에서 태어난 부토의 배경이 그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기보다 호화로움에 익숙한 ‘서구인’으로 키워냈다고 주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부토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에 약했으며 영어를 모국어로 썼다. 반면,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어에는 서툴렀고, 자신의 출신지 언어인 신드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이런 성장 배경은 부토의 취향을 넘어 통치 스타일까지 규정했다. 총리 재임시절 부토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대지주 중심의 정책을 펼쳤고, 교육받은 중산층은 정치에서 소외시켰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지주가 개를 후보로 내세워도 소작인들이 99% 찬성표를 던지는” 후진적인 정치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달림플은 꼬집었다. 그는 이를 ‘선거 봉건주의’(elective feudalism)라고 규정했다.

부토 재임 기간 부패와 초사법적 폭력도 만연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국제투명성기구’(TI)로부터 부패국가 3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의 피살로 수사가 종결되기는 했지만, 부토에겐 남편과 함께 막대한 국부를 스위스·영국·미국의 비밀계좌로 빼돌렸다는 혐의가 끊이지 않았다.

달림플은 부토나 그의 정적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모두 민생을 외면하고 특권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기업인과 군부, 지주들은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를 챙겨준다. 공공 교육제도는 엉망이고, 빈민들에게 사법 정의란 없다.”

이런 집권 엘리트들의 실정이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의 부상을 낳았다는 게 달림플의 결론이다. 이집트와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빈민들이 강경 이슬람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부패 척결과 부의 공평한 분배 등 ‘사회적 정의’ 담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파키스탄 빈민들도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주와 군부를 척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어, 파키스탄 사태의 근본적 해결까지는 참으로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달림플은 “부토는 거듭된 위협에도 싸움을 이어간 용감한 정치인이었으며, 그를 잃은 슬픔은 여전하다”면서도 “이 친서방 봉건 지도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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