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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32년 철권통치 수하르토 누구였나?

등록 2008-01-27 15:35수정 2008-01-27 17:12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인도네시아를 32년간 철권통치했던 수하르토(86)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비판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번영을 이끈 군사.정치 지도자였다.

수하르토는 1967년 와병 중이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이양받는 방식으로 집권한 후 철권통치를 펼치다 1998년 아시아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자카르타 자택에서 은둔생활을 해왔다.

그는 근년 들어 몇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겨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고 새해 들어서는 불안정한 상태를 보인 끝에 지난 4일 입원,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면서 수혈과 각종 의료장치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왔다.

네덜란드 통치기였던 1921년 6월8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에서 태어난 수하르토는 고교 졸업 후 네덜란드 식민지군에 입대, 부사관으로 출발했으나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군도를 점령하자 일본군이 조직한 방위군에 재입대해 장교로 임관했다.

수하르토는 그러나 처음엔 다른 식민지인들처럼 일본군을 환영하다 1945년부터 항일투쟁으로 전향했다.

인도네시아 군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신생 인도네시아공화국에서 계속 군인으로 복무하던 그는 1965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무력으로 진압한 후 1967년에 수카르노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후 하야할 때까지 7선 대통령이었다.

수하르토는 재임 때 인도네시아를 공업국가로 이끌었으나 자녀들과 친인척으로 막강한 경제권력을 구축하는 등 오랜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도 컸다.

인도네시아는 1997년 외환위기가 촉발되기 전까지 석유와 가스산업의 수익을 이용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덕분에 '개발의 아버지'로 국민의 추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7월 루피아화 폭락과 그에 따른 물가폭등으로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폭동과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게 되고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시위로 결국 1998년 5월에 하야하게 된다.

부패감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는 2004년 수하르토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규정하고 그가 재임 때 국고에서 빼돌린 금액이 무려 150억~3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네시아 검찰은 각종 부패 혐의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형사처벌할 계획이었지만 그의 병세 악화를 이유로 2006년 5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결국 수하르토가 대통령 재직시 횡령한 자선단체 기금과 손실금 등 모두 15억4천만 달러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선에서 그에 대한 '단죄'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수하르토가 죽더라도 그의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지난 7일 밝힌 바 있다.

수하르토는 하야 후에 독재자의 신분으로 법의 처벌을 받지도 않고, 또 외국으로 달아나지도 않은 채 평온한 말년을 보냈는데, 이는 다른 국가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로 간주되고 있다.

실제로 수하르토는 하야 후에도 그의 각료들 중 상당수가 새 정부에 잔류하면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계속 미쳐왔다.

지난 2006년 5월 여론조사기관 '서베이 인도네시아'가 수하르토 퇴진 8년을 맞아 실시한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 국민 상당수가 수하르토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에 대한 악명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성철 통신원 speednews99@yna.co.kr (자카르타=연합뉴스)

27일 사망한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생전에 경제발전을 일궈낸 '개발의 아버지'와 인권 탄압과 부정 부패를 일삼은 '독재자'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건강악화로 임종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도네시아 국민 사이에 그를 용서하자는 동정론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10년 전 그의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끌었던 학생 지도자 아미엔 라이스.

라이스는 1998년 수 천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의사당으로 난입해 "수하르토의 목을 매달아라"라며 격렬한 구호를 외쳤었다. 그랬던 그가 앞장서서 수하르토에 대한 용서를 말한 것.

라이스는 수하르토가 대통령에서 사임한 이후 10년이 흘렀고 4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으나 그 누구도 수하르토를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면서 "이제 늦었다. 그가 죽어가고 있는 지금이 그를 용서할 때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등 지도층도 수하르토가 재임 시절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며 그에 대한 관용론을 폈다.

호세 라모스 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 역시 동티모르 침공 명령을 내린 장본인인 수하르토를 용서하자고 촉구했다.

오르타 대통령은 최근 "과거를 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수하르토가 죽기 전에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처럼 수하르토에 대한 동정론이 제기되는 것은 그가 말년에 보여줬던 일부 `인도주의적' 행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수하르토도 지난해 미 시사주간지 타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한 뒤 거액의 배상금 대부분을 빈민을 위해 내놓는 등 뒤늦게나마 민심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수하르토 집권 시절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은 죽음만으로 죗값을 치를 수 없다며 일각의 동정론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수하르토 정부 시절 정치범과 가족 100여명은 최근 수하르토 가족의 선산이 있는 솔로시(市)에서 "죽기 전에 법정에 세워라"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수하르토는 집권 시절 수 십만명의 정적을 재판 없이 처형하거나 투옥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는 수하르토의 일가가 350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을 축적했다며 그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꼽기도 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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