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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한국전서 싸운 할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운 뉴질랜드 소녀

등록 2008-02-03 22:54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용사의 후손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아시아 뉴질랜드 재단이 3일 발표한 데이비드 홀보로우 기념 장학생에 선발된 뉴질랜드 소녀 엘로이스 네빈이 쓴 장학금 응모 에세이의 마지막 구절이다.

네빈은 이 에세이에서 "할아버지는 그 때 모험을 원하고 있었다"면서 할아버지는 한국전이 일어나자 한국을 도우러 가기 위해 매일 전쟁 소식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네빈은 할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색다른 해외 경험이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할아버지에게 있어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중요한 장소"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해 4월 25일 뉴질랜드 현충일인 안작 데이 퍼레이드에 나선 할아버지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할아버지와 옛 전우들의 헌신과 충성심, 용기에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면서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용사의 후손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뉴질랜드 재단 한국학 프로그램 창시자인 데이비드 홀보로우를 기념하는 장학금은 매년 3명에게 각각 3천 달러 씩 주어지는 데 네빈은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용사 후손 자격으로 이 장학금을 받게 됐다.

다음은 뉴질랜드 남섬 티마루 여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올해 법학과 인문학 복수 전공으로 오타고 대학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할 예정인 네빈의 에세이 요약.

한국 전쟁은 남북한 주민 등 아시아인 350만명과 미국인 3만3천여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에 비해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전은 어쩌면 조그만 전쟁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전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음에 틀림없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고, 또 일부에게는 생의 종말을 뜻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뉴질랜드 군인으로 한국전에 참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살아서 돌아온 우리 할아버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2007년 4월 25일, 오늘 안작 데이를 맞아 우리 할아버지가 내 앞에 서 있다. 한국전에서 싸웠던 생생한 기억들을 간직한 채 할아버지의 가슴에서 훈장들이 번쩍이고 있다.

내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의 어깨는 한껏 뒤로 젖혀져 있고, 가슴은 앞으로 쑥 내밀어 져 있다. 그리고 얼굴은 단호하다. 행진을 위한 준비가 끝난 것이다.

다른 퇴역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신념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모든 게 익숙해 보인다.

할아버지는 직접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다. 용기와 충성심, 그리고 증오에 찬 행동과 눈앞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전우와 적들.

한국전은 지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됐다. 그 후 세계열강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을 파견했고, 중공군은 북한을 지원했다.

고향 와이마테에 있던 할아버지는 그 때 모험을 간절히 원했다. 새롭고 다른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늘 한국전 상황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한국전 참전 소집 통보가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날에는 전쟁을 경험하기 위해 소집 통보를 학수고대한다는 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 그야말로 색다른 해외경험을 해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나에게 술회했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한국은 인생의 시작을 의미하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던 셈이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51년 시작됐던 휴전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유엔군 측의 병력 증원 필요성이 생김에 따라 드디어 뉴질랜드 군인들에게도 소집 통보가 떨어졌다.

뉴질랜드는 한국전에 포병, 수송병, 통신병 등 지상군 병력과 해군 함정 등을 파견했는데 우리 할아버지도 드디어 52년 1월 조국의 부름을 받고 조그맣고 평화로운 뉴질랜드 시골 마을을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나는 휴전선 남쪽에 배치됐다"면서 "최 일선은 아니었지만 맡은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통신은 중요한 요소다. 많은 군인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훈장을 가슴에 달고 행진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아도 전쟁에서 통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와 전우들 사이에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쉽게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육체적으로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하나가 돼 싸웠을 게 틀림없다.

할아버지가 한국의 심장부에 투입돼 싸우기 시작한 후 8개월이 지나갔으나 전쟁은 서로 밀고 밀리며 여전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쪽도 더 이상 땅을 크게 빼앗지 못했고, 많이 잃지도 않았다.

그러다 53년 7월 27일 한국전은 드디어 휴전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 할아버지도 이에 따라 '멋진 해외경험'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오늘 당당하게 행진하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옛 전우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부터 그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나는 그들의 헌신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충성심과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내 앞에 어깨를 쭉 펴고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뉴질랜드의 한국전 참전 용사 후손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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