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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국왕·탁신 그림자’에 퇴행하는 민주주의

등록 2008-10-12 22:24수정 2008-10-12 23:03

타이 세력대결구도
타이 세력대결구도
전문가와 함께 보는 국제현안
타이 시위정국 ‘반년째’

타이 수도 방콕에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다섯달째 계속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민주주의민중연대(PAD)는 지난 8월부터 정부청사를 점거했다. 이들과 친정부 세력, 경찰의 충돌로 유혈 사태도 일어났다. 군부 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추측도 난무한다. 솜차이 웡사왓 총리는 이번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순방을 전격 취소했다.

시위대는 집권 연립정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2006년 부패 혐의 논란 끝에 실각했던 탁신 친나왓 총리의 ‘친위대’라는 이유다. 2년 전에도 피에이디는 반탁신 시위를 주도했다. 시위와 혼란 끝에 쿠데타가 일어났고 국왕 승인 아래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지난해 이 군정이 물러나면서 총선을 실시했고, 피플파워당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지금의 반정부 시위가 선거민주주의를 무시한 ‘극우 파시스트 집단의 폭동’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10일 만난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는 “아시아 지역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사례들 가운데 타이가 최악”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와 함께 타이 정치의 심층을 탐색했다.

시위대, 존왕파와 ‘적황동맹’ 구축
탁신 ‘카리스마’ 농촌서 여전한 인기
지식인들 조차 ‘민주주의 인식’ 결여

-반정부 시위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흔히 ‘적황동맹’이라고 한다. 1970년대 학생운동 세대 출신의 일부 지식인들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국왕 지지 세력이 손을 잡은 것이다.(노란색은 국왕의 상징) 현재 피에이디 지도부를 반씩 차지하는 두 세력은 2006년 탁신 축출 과정에서 굳게 맺어졌다. 지식인들 쪽에서 탁신 같은 자본가의 지배가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면서 ‘존왕파’ 세력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최근 캄보디아 국경의 힌두사원 문제에서 보듯 타이 사회의 민족주의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수도 방콕이 중심 지지 기반이다.

-탁신은 집권 시기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지난해 선거에서도 ‘친탁신’을 내세운 피플파워당이 승리했다. 원동력은? 탁신의 등장은 90년대 말 아시아 경제 위기의 결과였다. 타이는 위기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집권 민주당(DP)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문한 조처들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경제 상황은 나아졌지만 실업률 증가, 중소기업 파산, 양극화 심화 등으로 사회적 불만이 생겼다. 외국 자본의 진출에 타이 국내기업들의 반감도 컸다. 탁신은 이 틈새를 이용해 집권했다. 의료지원 확장과 농가부채 탕감 등 재정확대를 동반하는 사회정책을 내걸어, 세계화 물결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하는 빈민·농민층 지원에 앞장섰다. 더불어 거시경제 지표도 잘 관리했다. 탁신 시기에 타이의 경제 성장은 분명했고, ‘탁시노믹스’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주목도 받았다.

-탁신이 비난받는 이유는? 탁신은 경찰 출신으로 성공적으로 사업체를 일궈낸 자수성가형 재벌이다. 자기 돈을 늘리는 논리에 익숙한 자본가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다. 부패 혐의 논란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주식 매각 탈세 혐의는 재벌 출신이 아니었다면 안 했을 일이다. 당시 세금을 냈다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권 초부터 탁신을 백안시했던 지식인들은 빈민·농민 지원 정책도 비난했다. 정부 재정을 고려 않은 포퓰리즘이란 논리였다. 하지만 농민층의 탁신에 대한 지지는 한결같다. 탁신의 부패 논란이 한창일 때에도, 결국 총리직을 잃고 집권당이 해체된 뒤에도 농민층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다시 선거를 치러도 마찬가지일 거다. 민주당 지지 성향의 남부 무슬림 지역을 빼면 농촌 인구가 60%다. 선거로 탁신 쪽을 이기진 못한다.


-반탁신 세력은 선거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선거를 ‘부르주아 집권을 위한 정치 게임’이라고 폄하하는 것일 수 있다. “민주주의에 선거가 필수적인지는 확신이 안 선다”고 말하는 지식인을 본 적이 있다. 탁신 세력에 지지를 보내는 농촌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왕 세력과 연대한 이들은 군부 쿠데타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인다. ‘직접민주주의’라는 주장은 같을지언정,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이었던 한국의 촛불시위와는 다른 이유다.

-앞으로 전망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합의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는 타이 정치는 퇴행하고 있다고 본다. 도시 중산층은 자본가 독재를 비난하면서 전근대적 상징물인 국왕에게 의지하고 있다. 빈민·농민층은 탁신의 카리스마를 전근대적 지도자의 상징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친탁신도 반탁신도 아닌 제3세력의 지식인들이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내놓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하다.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카리스마로 어떤 정치세력보다도 장수하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81) 국왕 사후에 변화가 올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들도 있다.정리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박은홍(47)
박은홍(47)
박은홍(47)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 학교 아시아엔지오(NGO)정보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복합적 갈등 속의 아시아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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