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시위대가 12일 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거리에 배치된 군 장갑차를 빼앗아, 수도 방콕의 외교부 인근 거리를 지나고 있다. 방콕/AP 연합
사퇴요구 시위 진정안돼…쿠데타·조기총선론 대두
친탁신계 UDD-친왕실파 PAD 정국갈등 ‘도돌이표’
친탁신계 UDD-친왕실파 PAD 정국갈등 ‘도돌이표’
아피싯 웻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타이 내각이 출범 넉달 만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이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가 11일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장에 들어가 행사를 무산시킨 데 이어 12일 시위가 더욱 격화되자, 아피싯 총리는 이날 수도 방콕과 주변 5개 주에 비상사태 선포라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5명 이상의 집회가 금지됐고, 방콕 시내엔 군대가 배치됐다. 타이 일간 <네이션>은 쿠데타 또는 조기 총선이 임박하다는 설이 떠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스터 나이스 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화적이던 아피싯 총리가 강경 자세로 돌아선 것은, 정부가 상황 통제력을 잃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피싯 총리가 12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직후에도 시위대 수백명이 총리 차량을 부수고 버스를 이용해 정부 청사로 향하는 길목을 막기까지 했지만, 군인들은 시위대를 밀쳐내기만 했을 뿐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 경찰이 시위 주동자 가운데 한 명인 아릿만 뽕루앙롱을 체포하자, 시위대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11일에도 군경은 파타야의 아세안+3 정상회의장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간 시위대를 막으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정상회의가 무산되자 시위대는 “우리는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네이션>은 “군대와 경찰이 아피싯 총리에 충성하는지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찬윗 까셋시리 타마삿대학 전 학장은 <에이피>(AP) 통신에 “유혈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부가 통제력을 잃는다면 군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에서는 지난 1930년대 이후 쿠데타가 18차례 일어났으며, 정국의 향방은 군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아피싯 내각이 흔들리고 있다는 조짐은 지난달부터 나타났다. 2006년 쿠데타로 물러난 탁신 친나왓 총리를 지지하는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은 지난달 26일부터 18일째 정부청사를 봉쇄하고 있다. 지난 9~10일에는 방콕에서만 10만명 넘는 시위대가 모였고, 시위는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타이 정국 혼란의 뿌리는 탁신 전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2006년 사태까지 이어져 있다. 왕실 상징색인 노란색 셔츠를 입어 ‘옐로 셔츠 부대’라 불린 친왕실 기득권파 민주주의민중연대(PAD)는 당시 탁신 총리가 물러난 뒤에도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한 탁신 계열 정부의 사퇴를 요구하며 반정부 시위를 계속했다. 이들의 시위로 지난해에만 친탁신 계열의 사막 순타라웻 총리와 솜차이 웡사왓 총리가 잇달아 물러났다.
그러나, 탁신 전 총리의 집권 당시 의료보험 확대 등 혜택을 입은 빈곤층과 농민들은 여전히 탁신을 지지한다. 이들은 ‘옐로 셔츠 부대’와 구별하기 위해 붉은 셔츠를 입고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정부청사 봉쇄 등은 반대편인 민주주의민중연대의 전략과 판박이다. 뿌리 깊은 분열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타이 정국은 이들 양대 세력의 도돌이표 시위 속에 혼란을 거듭할 확률이 높다. <네이션>은 12일 “승자는 없다”며 “타이 전체가 패배자”라고 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타이 정국 탁신계와 반탁신계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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