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스리랑카 정부 고위관료 밝혀…내전 불씨 꺼져
스리랑카 타밀반군의 최고지도자인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54)이 18일 스리랑카 정부군에 사살됐다. 26년간 지속된 ‘아시아 최장의 내전’에 마침표가 찍혔다. 스리랑카 육군참모총장인 사라스 폰세카 중장은 이날 국영 텔레비전에 나와 “프라바카란을 사살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우리는 국토 전체를 테러리스트로부터 해방시켰으며,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장악했던 전 영토를 통제하에 두게 됐다”며 최종적 승리를 선언했다. <로이터> 통신 등은 프라바카란이 이날 정보 책임자 포투 암만, 해군 사령관 수사이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교전 지역에서 탈출하려다 정부군 특수부대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앞서 정부군은 프라바카란의 아들 찰스 앤서니의 주검도 발견했다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이로써 소수파 타밀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기치로 내세웠던 타밀반군의 지도부는 완전히 와해됐다. 프라바카란은 18살이던 1972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의 전신인 타밀 뉴타이거를 결성했고, 1983년 내전 돌입의 도화선이 된 정부군 13명 사살 사건을 주도하는 등 타밀반군 투쟁 역사의 핵심이다. 프라바카란을 인터뷰해 전기를 쓴 인도 언론인 나라얀 스와미는 “프라바카란은 타밀엘람호랑이 그 자체이며, 그가 없다면 그들은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바카란이 이끄는 타밀반군은 전성기이던 2000년 무렵 스리랑카 영토의 거의 3분의 1을 장악해, 사실상 준독립국가를 이뤘다. 전투기와 소형 잠수함까지 갖추고, 조세제도와 로스쿨까지 마련했다. 자살폭탄 공격도 이들이 개발했다. 특히 테러에 어린이와 여성을 이용하고, 전투원들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목에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 목걸이를 항상 걸고 다니게 했다. 프라바카란의 비타협적 투쟁노선은 몰락의 원인이기도 했다. 2002년 평화협상을 통해 타밀족은 실질적 자치를 얻고 중앙 정치권력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협정 뒤에도 테러를 감행하며, 완전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투쟁을 고수하다 고립에 처했다. 1991년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 암살사건은 국제사회에서 타밀족에 대한 비난여론을 고조시켰고, 자금줄인 인도내 타밀족들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도 정부를 완전히 돌아서게 한 것은 전략적으로 결정적 실책이었다는 평이다. 프라바카란의 죽음으로 타밀반군의 군사력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게릴라전이나 폭탄공격 등이 계속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싱할리족의 차별에 항거하는 타밀족들의 비원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족 차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리랑카 정부는 최근 내전 막바지에 수십만명의 타밀족 민간인이 갇혀 있던 반군지역에 무차별 포격을 가해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등 국제사회의 비난을 일으켰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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