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법치주의 진일보” 야당 “형량 지나쳐”
담당판사들 집주변 무장경찰 배치 ‘특별경호’
담당판사들 집주변 무장경찰 배치 ‘특별경호’
국고 유용과 돈세탁 혐의로 기소된 천수이볜(58) 전 대만 총통에게 떨어진 종신형의 후폭풍이 대만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집권당인 국민당은 대만의 법치주의가 진일보했다며 환호했으나, 야당인 민진당과 천 전 총통 지지자들은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재판부와 정부를 연일 성토하고 있다.
대만에서 전직 총통이 중형을 선고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4일 이번 판결이 ‘권력남용 국가’ 대만에서 법의 지배가 구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천 전 총통이 재판 과정에서 줄기차게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임을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천 전 총통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판사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대만 경찰은 재판장을 비롯한 3명의 판사 집 주변에 기관총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병력을 배치해 24시간 경비를 서고 있다. 30대 초반의 한 여성판사는 재판을 맡은 뒤 집을 옮기고, 휴대전화 번호도 바꿨다고 대만 신문들이 전했다.
민진당은 재판 과정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민진당은 12일 낸 성명에서 “천 전 총통에 대한 구속을 즉시 중단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천 전 총통 지지자 30여명은 판결 직후 종신형을 선고한 판사의 집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만의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판결을 지지하는 쪽이 많지만, 반대하는 이들도 만만찮다. 대만 <연합보>가 8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를 보면, 천 전 총통에 대한 판결이 합리적이라고 답한 이들이 34%로 다수를 차지했으나, 과도하다고 답한 이들도 21%에 이르렀다. <중국시보>의 여론조사에선 천 전 총통에 대한 판결에 동의한다는 응답자가 40%, 판결이 가혹하다는 응답자가 24%로 나타났다.
천 전 총통은 판결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항소와 저술을 통해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천 전 총통은 옥중에서 자신에 대한 판결이 대만 독립노선에 대한 미국과 마잉주 정권의 정치적 보복임을 주장하는 세번째 책 <미국의 레드라인>을 펴낼 계획이라고 홍콩 <빈과일보>가 최근 보도했다. 천 전 총통은 앞서 <대만의 십자로> <막을 수 없는 목소리>란 두 권의 책을 통해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타이베이 지방법원은 지난 11일 부패 및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천 전 총통과 부인 우수전에게 유죄를 인정해 각각 종신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천 전 총통이 스위스의 은행 두 곳에 돈세탁을 거친 2100만달러 규모의 불법자금을 은닉했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이 불법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조만간 스위스 사법당국에 판결문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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