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마기다나오주에서 최악의 정치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24일 한 희생자의 손이 경찰이 친 폴리스라인 아래로 보인다. 마기다나오/AP 연합뉴스
마기다나오 주지사 선거 관련
취재기자 12명, 여성 13명 희생
취재기자 12명, 여성 13명 희생
유력 가문 사이 갈등이 최악의 선거테러를 불렀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주지사 후보 등록을 하러 가던 일행 46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등 뒤에 손이 묶인 채 총을 맞거나 신체 일부가 훼손된 채 내팽개쳐진 주검들이 23일 발견되었고, 이어 근처에 파묻힌 주검 11구가 24일 추가로 발견됐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이 지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병력을 증파했다. 끔찍한 ‘학살사건’에 내년 5월 총선과 대선을 앞둔 선거 정국도 요동치게 됐다.
참사를 당한 이들은 민다나오섬 마기다나오주에 있는 불루안시 시장 이스마엘 망구다다투의 아내와 측근, 지역 언론인들이다. 망구다다투는 지난 23일 아침 내년 있을 선거에 주지사 선거 후보로 등록을 하기 위해 40명 이상의 일행을 선거위원회 사무소로 보냈는데, 이들이 중간에 무장 괴한 100여명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사망자가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도 높다. 망구다다투는 주지사 선거 참여 선언 뒤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직접 후보자 등록 장소에 가지 않았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일행에는 여성들을 많이 포함시켰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정치테러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무장 괴한들은 여성에게도 총구를 겨눴다. 확인된 사망자 가운데 그의 아내와 아내의 자매 2명 등 13명이 여성이었다.
이 사건은 보기 드문 언론인 학살로도 기록됐다. 취재차 동참한 기자 최소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이는 하루 동안 숨진 언론인 수로는 저널리즘 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했다. 타이에 본부를 둔 ‘동남아시아 프레스 동맹’은 필리핀이 소말리아와 이라크, 파키스탄에 이어 네번째로 언론인에게 위험한 국가라고 꼽았다.
학살 배후로는 마기다나오주 현 주지사인 안달 암파투안이 속한 정치가문인 암파투안 가문이 꼽히고 있다. 아로요 현 대통령과 정치적 동맹관계로 알려진 암파투안 가문은 망구다다투 가문이 새로 주지사 선거에 뛰어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필리핀 언론인 <마닐라 불리틴>은 암파투안 주지사와 아들이 학살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학살 사건이 스페인과 미국의 통치하에 형성된 250여개 유력 가문이 지배하는 필리핀 정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필리핀에선 비교적 평화로웠다는 2007년 상원의원 선거 때도 전국에서 130명이 숨졌다. 필리핀 지방 정치가들은 수백명에 이르는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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