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 위의 시위대 일명 ‘레드셔츠’로 불리는 타이 반정부 시위대가 11일 방콕에서 전날 타이 군이 강제해산 작전에 실패한 뒤 버려둔 장갑차 위에 올라 앉아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타이 군경-시위대 유혈충돌
서로 “실탄 쐈다” 비난…아피싯 총리 사임거부
시위대도 정부 협상제안 등돌리고 국왕은 침묵
서로 “실탄 쐈다” 비난…아피싯 총리 사임거부
시위대도 정부 협상제안 등돌리고 국왕은 침묵
타이 정부의 반정부시위대 강제해산 작전 와중에 군인과 민간인 21명이 숨지는 유혈참극이 일어나면서 타이 정국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아피싯 웨차치와 타이 총리는 10일 유혈참극이 벌어진 직후 국영 텔레비전에 출연해 “정부와 나는 아직 이번 사태를 해결할 책임이 있으며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유혈사태에도 불구하고 사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지만, 아피싯 총리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었다.
타이 정부는 10일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레드셔츠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했으나 1992년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라는 비극만 남겼다. 타이 군이 이날 낮 시위 진압을 위해 제1보병연대 사령부에서 병력을 이동시키려 하자 레드셔츠 시위대가 막아서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군은 시위대에 물대포를 쐈다. 저녁으로 접어들면서 군이 방콕 시내 곳곳에 고무총탄을 쏘고 헬리콥터로는 최루가스를 뿌리며 진압 강도를 높였다. 저녁 8시30분께 콕우아 교차로 등에서는 수류탄이 터지고 실탄 발사 소리가 들렸다고 <방콕 포스트>는 전했다. 이 와중에 최소 군인 5명을 포함해 21명이 숨지고 870여명이 다쳤다.
군과 시위대는 서로 상대방이 “실탄을 사용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만약 양쪽 모두 실탄을 사용했다면 누가 먼저 쐈는지도 불분명하다. 아피싯 총리는 “군의 실탄 사용 허가는 시위대 해산을 위해 허공을 향해 발사하는 것에 국한됐다”며 “조사 결과 군은 시위대를 향해서는 고무총탄만을 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타이 군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장갑차를 버리기도 했으며, 28명이 시위대에 인질로 잡히기도 했다.
아피싯 정부는 시위대에 협상을 제안했지만, 레드셔츠 시위대는 거부했다. 지도부 가운데 한 명인 웽 토지라칸은 “협상은 끝났다. 살인자들과 협상할 수 없다”며 “우리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아피싯 총리는 지난달 28~29일에도 협상을 벌였으나, 즉각적인 의회해산과 조기총선 주장을 굽히지 않는 레드셔츠 지도부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중재를 해줄 이도 마땅하지 않다. 결정적인 순간에 중재 구실을 했던 푸미폰 아둔야뎃(82) 타이 국왕은 지난해 9월 입원하는 등 노쇠화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피싯 총리의 위기는 탄생 때부터 싹이 텄다. 아피싯 총리는 탁신 전 총리를 반대하는 세력인 일명 옐로셔츠 시위대와 탁신을 쿠데타로 쫓아낸 군의 지지를 받고 2008년 12월 취임했다.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들은 아피싯 총리의 집권이 정당성이 없다고 간주하고 끊임없이 실력 행사를 해왔다. 힘으로 집권한 아피싯 총리가 또다른 힘의 행사라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레드셔츠 시위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아피싯 총리를 특권층의 전형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타이 일간 <네이션>은 11일 ‘우리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협상은 다시 시작되겠지만 평화가 찾아올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며 “그러나 타이는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적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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