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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아키노·아로요·마르코스…필리핀 ‘가문의 부활’

등록 2010-05-05 21:17

필리핀 정치가문 주요 입후보자
필리핀 정치가문 주요 입후보자
10일 3대선거 동시 실시…유력 가문서 대거 출마
아키노 대선지지율 1위…토지개혁등 어려울듯
지난해 8월 1일 필리핀 ‘피플 파워’의 상징 코라손 아키노(76) 전 대통령이 대장암으로 숨지자, 필리핀 정계에서는 아들인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3세 상원의원에게 차기 대선에 출마하라는 제의가 쏟아졌다.

정치적으로 각광받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50살이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며 어머니 곁을 지키던 그는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에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조부가 필리핀 초대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마르 로하스 자유당 총재는 자신은 부통령 후보로 물러나면서 노이노이 아키노를 대선 후보로 영입하기 위해 뛰었다. 노이노이 아키노는 한달여를 고사하다가, 이달 10일 열리는 대선에 출마를 선언했다. 필리핀 유력 정치가문인 아키노 가문이 다시 필리핀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노이노이 아키노에 대한 지지도는 지난달 말 여론조사에서 39%에 달했다. 다른 대선 후보인 입지전적 부동산 재벌 마니 빌랴르 상원의원(20%)과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20%)의 지지도를 합친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아키노 가문 뿐만이 아니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가 한꺼번에 열리는 이번 선거에서 필리핀 유력 정치가문의 대표 주자들이 앞다퉈 출마를 선언했다. 아버지가 9대 대통령이었던 명문 가문 출신 현직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는 고향인 팜팡가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아로요의 장남과 남편, 형제자매 등 4명도 이번 하원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전했다. 독재자로 악명 높았던 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가문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북부 일리코스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아들인 마르코스2세는 상원의원에 도전했고, 장녀는 일리코스주 주지사에 출마했다. 마르코스2세는 비야르 상원의원 지지를 선언하며 노이노이 아키노 후보와 대립하고도 있다.

필리핀 정치에서 유력 가문이 득세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 시절 토착 지배세력들이 식민당국과 결탁하면서 힘을 길렀다. 200여개로 추정되는 이 유력가문들은 교회가 불하했던 토지까지 손에 넣어 현재 필리핀 전체 토지의 70%이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토지 개혁 실패는 이들의 지배력 유지에 날개를 달아줬다. 50년대 필리핀이 아시아 2위 경제대국이던 시절 서민 대통령이었던 라몬 막사이사이,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 민주화의 상징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때 토지개혁이 시도됐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김동엽 부산외대 동남아지역원 교수는 “필리핀에서 정치를 하려면 돈, 조직, 무력 3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새로운 정치세력 대두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특정 지역에서 모두를 갖춘 유력 가문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암파투안 가문이 지난해 민다나오섬에서 정치적 맞수를 제거하기 위해 57명을 살해한 일은 무력까지 갖춘 유력 가문에 도전 할 때 닥칠 수 있는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리핀은 1987년 헌법에서 대통령 임기 6년 단임, 상원 2회, 하원 3회 연임으로 제한했으나, 유력가문이 가족 구성원끼리 선출직위를 서로 바꾸어 출마하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필리핀 정치 평론가 라몬 카시플레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필리핀 정치가문의 힘은 나라보다도 강하다”고 말했다.

노이노이 아키노의 한계로 지적되는 것도 가문의 그늘이다. 그가 내세운 핵심 구호는 “부패가 없다면 빈곤도 없다”이다. 김 교수는 “이 구호에서 핵심은 부패척결인데 이는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비교적 부패에서 자유롭고 종교적으로 신실한 이미지에 기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이노이 아키노 후보는 “어머니의 죽음 이전에는 대선 도전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유세장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상징색처럼 쓰였던 노란색 물결이 넘쳐난다. 빌랴르 등 맞수들은 “노이노이 아키노가 여태껏 한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공격하고 있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때 정권에 참여했던 위니 몬소드는 <타임>에 “노이노이 아키노는 아버지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어머니의 신실함은 있다”고 말했다.

노이노이 아키노는 마이크로크레딧 등을 이용해 중산층을 늘리겠다고 공약했으나 토지 개혁같은 급진적 개혁은 출신 배경 탓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어머니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가문인 코후앙카 가문은 산미구엘 그룹의 소유주이며 대농장을 갖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만약 노이노이 아키노가 당선된다면 그의 가문이 갖고 있는 64.35㎢에 달하는 마닐라 북부 사탕수수 농장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노이노이 아키노가 당선된다고 해도 큰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필리핀 정치와 경제발전 모두를 이룩하는 것인 길고도 지난한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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