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정국 일지
19일 ‘레드셔츠’ 시위대 지도부가 투항하면서 지난 3월14일 레드셔츠의 시위 돌입과 4월3일 라차쁘라송 거리 무단점거로부터 두 달 넘게 계속된 타이의 혼란상황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2006년 군부 쿠데타와 탁신 친나왓 총리 실각으로부터 3년 반 동안 더 깊어진 계층 대립의 ‘휴전’에 가깝다.
지난해부터 의회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산발적으로 벌였던 레드셔츠 시위대들은 올해 2월 대법원이 탁신의 재산을 몰수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3월 전국에서 수도 방콕으로 몰려들었다. 승려들까지 나서서 모은 혈액을 의회 앞에 뿌리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이들이 요구했던 것은 조기총선과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 퇴진이었다.
4월10일 정부의 시위대 강제해산 작전에서 시위대와 군 등 모두 25명이 숨지고도 수천명의 시위대는 라차쁘라송 지역 중앙의 캠프를 떠나지 않았다. 바리케이드를 친 선봉대를 제외하고 여성과 노약자가 대다수인 시위대는 평화로운 집회를 지속했다.
이번 사태는 ‘피의 5월’이라고 불렸던 1992년 5월 방콕 시위 때와 크게 달라진 타이의 모습을 드러냈다. 나흘 동안 48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던 당시 시위도 요구사항은 총리 퇴진과 민주주의 쟁취였다. 하지만 92년 시위가 중산층 중심이었다면 이번 시위는 농민과 빈민층, 공산주의자까지 다양한 성향의 시위대가 이끌었다. 92년 중재역할을 했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이번 사태에 침묵하는 무능함을 드러냈다.
결국은 진압작전에 나섰지만 92년과 달리 경찰과 군대도 크게 갈라져 친탁신계 경찰이 수차례 시위대 진압을 회피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군부에선 친탁신계가 일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진압작전 시행을 놓고 대립했다.
92년 당시 학생 시위대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까루나 부아깜시는 “당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쳤지만, 이제는 시위대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이 다양하고 사회분열이 더 깊은 것 같다”며 “향후 오랫동안 사회갈등이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피싯 총리는 자리를 지켰고, 임기보다 약 1년 앞선 오는 11월14일에 총선을 치르겠다던 정부의 타협안은 물건너갔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상흔은 깊고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타이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19일 지도부의 해산 결정을 접한 뒤 울부짖고 있다. 방콕/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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