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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레드셔츠, 핏빛 주검 넘어 ‘눈물의 귀향’

등록 2010-05-20 21:46수정 2010-05-20 22:51

<b>지금은 돌아가지만…</b> 아들과 함께 타이 방콕의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한 시민이 20일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은신해 있던 사찰을 떠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지금은 돌아가지만… 아들과 함께 타이 방콕의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한 시민이 20일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은신해 있던 사찰을 떠나고 있다. 방콕/AP 연합뉴스
[타이 ‘홍동의 현장’을 가다]
진압현장 불교사원엔 시위대 참혹한 주검들…
고급 백화점·쇼핑센터 불타…도심 곳곳 폐허




20일 오전 방콕 수쿰윗 길에서 총을 든 군인이 막아섰다. “잠깐만 둘러보겠다”는 기자의 말에 잠깐 머뭇하더니 길을 열어준다. 라차쁘라송, 센트럴월드, 시암파라꼰 등으로 이어지는 이 길부턴 차량이 통제돼 모두 걸어다녀야만 했다.

19일 전격 강제해산 작전을 벌일 때 치열한 충돌이 일어났던 왓 빠툼 와나람 사원. 시위 막바지에 시위대 지도부가 여성과 노약자 등을 임시로 피난시켰던 이 불교사원에서 이날은 사람들이 레드셔츠 시위대 6명의 주검을 수습하고 있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주검도 있었다. 이마와 가슴 등에 총을 맞은 듯 핏자국이 선명한 주검 위로 기자들의 사진세례가 이어지는데, 별다른 제지도 없었다. 입구에서 총을 내려놓은 채 앉아 있던 군인 한명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강제해산 작전 뒤에도 남은 일부 레드셔츠는 그들의 분노를 방화와 파괴로 드러냈다.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쇼핑센터인 센트럴월드는 20일 오전 11시께에도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검은 연기 사이로 소방관들이 남은 불길을 잡기 위해 물을 뿌려댔다. 센트럴월드와 젠백화점 연결부분은 완전히 불타 검은 형체만 남았다. 시피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 세븐일레븐 몇 곳도 창문이 크게 깨졌다. 레드셔츠는 기득권층의 소유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건물에 공격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소방대원들이 20일 타이 방콕 중심가의 센트럴월드에 물을 뿌리고 있다. 타이 최대 쇼핑몰인 이곳은 전날 밤 레드셔츠 지도부의 투항 선언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의 방화로 불에 탔다. 방콕/조기원 기자
소방대원들이 20일 타이 방콕 중심가의 센트럴월드에 물을 뿌리고 있다. 타이 최대 쇼핑몰인 이곳은 전날 밤 레드셔츠 지도부의 투항 선언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의 방화로 불에 탔다. 방콕/조기원 기자
타이 최고의 고급백화점으로 꼽히는 시암파라꼰은 센트럴월드보다는 상태가 나았지만 공격을 피하진 못했다. 시암파라꼰이 있는 시암스퀘어 거리에 있는 각종 쇼핑센터들도 방화로 불탔다. 레드셔츠 잔존 시위대는 방콕 시내 30여곳에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방콕 시당국의 고위 관리는 “센트럴월드와 시암시어터 등 3곳은 너무 오랜 시간 불타 구조적 손상을 입은 탓에 철거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가 머물렀던 라차쁘라송 거리에는 레드셔츠들이 태운 폐타이어의 매캐한 냄새가 여전했다. 군과 경찰은 이 구역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레드셔츠 시위대의 흔적을 아직 치우지 못했다. 시위대 지도부가 연설을 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연단 위에는 빨간색 천에 영어로 “우리는 평화로운 저항자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쓴 펼침막이 아직도 걸려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점거농성 때 숙식을 해결했던 장소로 보이는 텐트촌 밑으로는 쓰레기가 넘쳐흘렀다. 강제해산 하루 뒤인 이날 방콕은 대규모 충돌이 있었던 장소로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지만, 시위대가 있었던 장소는 방콕의 다른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부유한 엘리트 계층 대 도시빈민, 농민으로 갈린 타이의 분열상을 보는 듯했다.

타이 방콕 경찰청에서는 남아 있는 레드셔츠 시위대 일부를 모아놓고 귀향 버스를 안내하고 있었다. 타이 북동부에서 왔다는 쁘라송 반센(71)은 “더이상의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해서 지금 해산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타이 북동부에서 방콕으로 와 두달 동안 시위대에 참가했다는 파린야 삼티숭런(49)은 “지금 정부는 가난한 이의 편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돌아가지만 내년에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군경의 진압은 우왕좌왕하던 이전과는 달리 신속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레드셔츠 시위대의 분노를 다독이고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쭐랄롱꼰대학 등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는 수타차이 임쁘라셋 교수는 “이번 시위 뒤에도 충돌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콕/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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